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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

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

성경에 나오는 많은 고대 제국들이 있습니다. 이 고대 제국들은 이런 저런 모양으로 이스라엘/유다와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있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들의 관심 밖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의 역사 이야기들(예를 들자면, 열왕기서나 역대기서)에 소개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 중의 한 예가 카르카르(The Battle of Qarqar) 전투입니다.

앗시리아(우리말 성경. 앗수르)의 군대와 이스라엘의 군대가 대규모로 만난 첫번째 전쟁은 아합 시대였어요. 기원전 853년에 살만에셀(Shalmaneser III: 858-824 BCE)의 군대가 가나안과 아람 지역의 나라들이 결성한 연합군과 카르카르에서 전쟁을 벌입니다. 12나라의 연합군에는 이스라엘과 함께 [1] 하맛(Hamath), [2] 아람 다메섹(Aram-Damascus), [3] 암몬(Ammon), [4] 아르와드(Arwad), [5] 쿠(Que), [6] 이르카나타(Irqanata), [7] 쉬아누(Shianu), [8] 우산나타(Usannata), [9] 마수라(Masura), [10] 아랍(Arab), [11] 이집트(Egypt-이집트의 참전에 대해서는 논쟁적이다.)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연합군의 지휘관이 아람-다메섹의 하다드에셀(Hadadezer)인데요. 아람이라고 하면,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아합과 전쟁에서 대패하여서 아합과 조약을 맺고 돌아갔던 나라입니다(왕상 20장).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되지 않아서 열두개 나라가 함께하는 연합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어찌되었든 아합은 2,000대의 병거와 10,000명의 군인들을 참전시켰습니다. 이 전쟁을 기록한 쿠르크 석비(Kurkh stela)가 없었다면, 아마 역사에 이 전쟁이 있었는지 조차도 몰랐을 거예요. 또 성경에 등장하고 서로 다툰 아람의 벤하다드(우리말 성경. 벤하닷)와 아합이 서로 다투었다가, 성경대로 전쟁 후에 서로 조약을 맺고 친선관계를 맺은 후, 몇년 후에는 곧 연합군으로 함께 앗시리아와 견주어 싸웠다는 사실은 역사 속에 묻혀 버릴 뻔 했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고학의 발견으로 알려진 살만에셀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또 있습니다. 아합의 뒤를 이어서 북왕국의 예후 역시 여전히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는 왕으로 앗시리아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예후는 아합의 군대의 장군이었습니다. 길르앗 라못에서 요람, 그리고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아람의 왕 하사엘과 서로 마주하고 있던 때, 요람이 전쟁 중 부상을 입었나 봅니다. 잠시 전열에서 빠져 나와 이스르엘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엘리사가 제자 중의 하나를 보내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전장에 있던 군인들이 모두 예후를 따르게 되었어요. 예후가 요람과 아하시야를 죽인후 북왕국의 왕으로 등극하고 이스라엘을 28년간 다스렸습니다 (842-815 BCE).

당시는 살만에셀이 아버지인 아슈르나시르팔 (Ashurnasirpal II)이 그어놓은 국경을 넘어 동서남북 종횡무진 군사를 이끌고 영토를 넓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의 군대와 만나는 것은 예측된 결과였지요. 이 영토 확장 전쟁에서 이미 이스라엘의 아합과 11개의 동맹 국가들이 연합하여 앗시리아의 팽창을 막아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쿠르크 석비가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미 강력한 위력을 과시한 앗시리아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합의 뒤를 이어 (비록 아합의 아들 요람을 죽이고 왕이되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왕이된 예후 역시 살만에셀의 정치, 군사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살만에셀은 비록 예후가 아합의 혈통은 아니었지만,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강력한 군주로 대표되는 오므리 왕가의 후예로 예후를 인정하였고, 그로부터 공물을 받아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확인하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고고학 유물이 살만에셀의 검은 오벨리스크 (Black Obelisk of Shalmaneser III) 입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검은색 현무암으로 만들어 진 사각형의 기둥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825년에 당시 앗시리아의 수도인 님루드 (Nimrud)에 세워졌는데요. 님루드라고 하는 곳은 성경에서 갈라 (Calah)라고 하는 곳으로 함의 아들 니므롯이 건설한 도시입니다 (창 10:11). 사각 기둥의 꼭대기 부분은 마치 지구랏 (Ziggurat)처럼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요. 이 오벨리스크는 영국의 고고학자인 레이야드 (Austern Henry Layard)가 1846년에 발굴한 것입니다. 이 오벨리크스의 네 면에는 다섯 줄로 그림과 함께 조공을 바치러온 나라들을 나열하고 있는데요. 두번째 줄이 예후가 보낸 공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살만에셀 3세가 예후로부터 조공을 받는 모습을 새겨놓은 그림을 보면, 살만에셀의 뒤로 한 시종이 햇빛 가리개를 받쳐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후의 뒤에 있는 또 다른 시종은 마치 살만에셀에게 부채질을 하듯하는 모습을 하고 있네요. 예후에게 조공을 받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살만에셀을 보고 있어요. 맨 양쪽의 사람들은 살만에셀을 호위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 옆 면에는 두명의 앗시리아 관리가 앞에 서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네 면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면으로 넘어가면서 파노라마 처럼 보는 방식이예요. 그렇게 파노라마로 보면, 호위병의 뒤로 세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만에셀에게 바칠 공물을 옮기고 있습니다. 다시 옆 면으로 돌면 그 면에는 조공을 바치는 다섯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있는 데요. 손에는 손잡이가 있는 항아리와 막대기, 잔과 왕의 홀과 막대기를 들거나 어깨에 메고 있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면에는 또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 다섯 명이 조공을 메고 이며 오는데요. 어깨에는 큰 그름들과 손에는 손잡이가 있는 그릇, 그리고 머리에는 무언가를 이고 있습니다. 살만에셀은 오벨리스크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오므리의 아들 예후로부터 공물을 받았다. 은, 금, 금사발, 금대접, 금 잔, 금 주전자, 주석, 왕의 손에 들린 홀과 막대기”

독립 국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합 시대 이후로 앗시리아의 속국으로 살아야했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만에셀의 검은 오밸리스크 (Black Obelisk of Shalmaneser III)가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조공도 큰 소용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722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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