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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신(Amar-Sin)

아마르-신(Amar-Sin)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안타까와하는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늦은 나이에 낳은 외아들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렸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양지와 음지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아브라함이 걸었던 삶의 길은 가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 어느 것 하나도 값지지 않은 것이 없지만, 가장 중요했던 순간을 꼽아 보라면 저는 주저 없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오려고 마음 먹었던 믿음의 결단과 그것을 몸으로 옮긴 용기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포기해야했을 많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포기하고 온 것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창 12:1) 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부를 만한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된 아브라함 인생 최대의 ‘버림(포기)’은 갈대아 우르에서 섬기던 신(神)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현재의 이라크)가 있었던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릅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개의 강 사이에 끼어 있는 땅’이라는 뜻의 메소포타미아는 각각의 도시들이 작은 나라들을 이루며 살았고, 이 도시들은 저마다의 신(神)을 섬겼습니다. 가히 신들의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냥 ‘하늘의 신’, ‘별의 신’, 이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의 중앙 부분을 관장하는 신은 안/아누(An/Anu), 북쪽 하늘을 다스리는 신은 엔릴/엘릴(Enlil/Ellil)이었고, 남쪽 하늘은 엔키(Enki)가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별도 마르둑(Marduk)은 목성, 니누르타(Ninurta)는 토성, 네르갈(Nergal)은 화성, 인안나(Inanna)는 금성, 나부(Nabu)는 수성, 난나/신(Nanna/Sin)은 달, 우투/샤마쉬(Utu/Shamash)는 태양을 관장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사람들이 보고 만지는 모든 것들을 각각 다스리는 신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도대체 몇명의 신들이 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도시마다 섬기는 신들도 다 달랐습니다. 그리고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다양한 신들을 필요에 의해서 섬겼어요.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했던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는 그가 우르 3왕조의 시대 끝자락(2112-2004 BCE)에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여섯 명의 왕들이 통치했었는데, 그 중에서 네번째 왕의 이름이 아마르-신(Amar-Sin)이었습니다. 아마르-신은 “달의 신(神)인 신(Sin)을 따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아마르-신이 통치하던 시절에 쌓은 건물의 진흙 벽돌이 에리두(Eridu)라는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요. 그 위에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아마르-신, 니푸르(Nippur 도시 이름)의 신인 엔릴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자, 우르의 위대한 왕, 네 지역을 다스리는 왕, 그가 사랑하는 주인 엔키(Enki 마실 수 있는 물의 신이자 에리두 도시의 신)와 압수(Apsu 깊은 땅 속의 물을 다스리는 신)를 위해서 신전을 세우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우르(Ur)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거주하였던 하란(Haran)은 달의 신(神)인 신(Sin)을 섬기던 도시였습니다.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도시에서 달의 신을 섬기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진흙 벽돌의 발견으로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에서는 적어도 달의 신 뿐 아니라, 농경 생활을 하는데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물의 중요성 때문에 물의 신들인 엔키와 압수도 신으로 섬겼다는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한 분 하나님’을 만났을 때, 얼마나 혼동스러웠을까요? 그리고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고 많은 신들의 형상 앞에서 향을 피워 올렸던 아브라함이 갑자기 “이 모든 신들은 거짓이고, 오직 여호와 한 분 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다.”라고 이야기 할 때,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알며 함께 살았던 친구들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갈대아 우르 사람들은 농경으로 먹고 사는데, 농업을 관장하는 신들을 부정하는 것이 쉬웠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한 분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 그리고 그렇게 만난 여호와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면, 아마도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 취급을 당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그 수 많은 신들에게 각각 제사를 드리는 날, 모두가 모였는데 홀로 빠진 아브라함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수근거렸을 것이고, 신들을 대하는 사고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당해야 했을 차별을 감내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성경에는 안나왔지만, 아브라함도 “나 혼자서 이게 뭐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고민 했을 지도 몰라요.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고향과 친척과 이웃마저도 과감하게 포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음성에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과거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신이라고 섬겼던 수 많은 신들에게서 돌아섰고, 우상을 숭배하던 가족, 이웃, 친구, 그리고 자기 나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던 그 땅을 향해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있던 광야로 세례를 받으려 나오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눅 3:8)”

고 선포하였습니다. 혈통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 과거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사람이 만들어 놓은)무수한 율법들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게 살았던 과거로부터 돌아서는 이가, ‘과거로 부터 돌아서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했던 아브라함’의 참 자녀라는 겁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예배의 자리(공간)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참 예배자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아브라함 처럼 버려야할 내 과거의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부터 망설임 없이 돌아서야(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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