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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서신] 교회 건축의 신학? – 가버나움

[이스라엘서신] 교회 건축의 신학? – 가버나움

형도 아시잖아요, 그 때 그 사건. 제 기억으로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 건축을 위한 작정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선뜻 천만 원을 작정하셨지요 (1997년 당시). 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엄마가 안 계신 거예요. 피곤에 지치셔서 엄마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죠, “어디 다녀오셨어요?” 머뭇거리시던 엄마는 늦은 시간까지 한림대학교 앞의 닭갈비 골목의 한 집에서 설거지며 야채 써는 일을 하시다 오셨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실 만큼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말 엄마에게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가 그렇게 일하신 것이 건축헌금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건축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헌금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마 임원교육 때에 들으신 모양입니다. 순간 버럭 화가 나더라고요. 형도 그 때 맘 많이 아프셨지요? 꼭 이렇게까지 해서 건축헌금을 해야만 하는가 싶더라고요.

교회 건축도 붐인가 봅니다. OO만 해도 제가 아는 소위 잘나간다는 교회들이 저마다 다들 새로 교회를 건축하고 이사하고 하였으니 말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오기 전에 우리 교회는 한창 공사 중이었고, 다른 교회들도 건축을 시작하거나, 공사 중이었어요. 듣자하니, 다들 멋진 교회를 건축하고는 미래를 맞을 준비를 마친 듯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서 교회의 로고마크들도 멋지게 만들고, 신세대를 위한 예배공간현대식 디자인을 표방한 교회가 사방에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OO시의 동네에서 가장 멋진 건물을 꼽으라 하면, 이구동성으로 OO교회를 이야기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형 교회도 참 독특하네요. OO의 아울렛의 한편을 교회로 사용해서 주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 아울렛의 주차장을 교회의 주차장으로 이용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번 아직 완공되지 않고 본당만 지어진 우리 교회에 갔을 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아세요? 처음 교회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하얀 교회의 외관은 마치 제약회사를 연상시켰고, 영~ 우리 교회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예배를 드리고 나서도,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은 것처럼 편치 않았습니다. 모르는 교인들도 많이 생겼고, 청년부 예배에 갔을 때에는 잘 모르는(아마도 제가 한국을 떠난 후에 등록한 청년인 듯합니다.) 청년이 제게 새신자 등록 카드를 작성하라고도 하더군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예전에 제가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엄마도 새로 지은 교회에 적응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갑자기 늘어난 교인들을 이제는 누구인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예전의 교회에서는 1000여 명의 교인을 거의 다 알고 길에서도 인사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아마도 이전의 교회는 나가는 출입구가 하나 밖에 없어서 어차피 안 만나려야 안 만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여러 개의 출입구로 들어가고 나가니, 맘먹고 피해 다니려고 한다면, 일 년 내내 안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새로 건축한 교회는 제가 한복 저고리에 양복바지를 입은 마냥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적응하겠거니 하지만, 옛날에 파묻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문제인가요, 제가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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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1,500년의 역사가 넘은 많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제가 느낀 것은 “이것이 정말 교회다!”입니다. 옛 교회의 모양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새로 건축된 그야말로 새 교회들도 여럿 있습니다. 2년 전 갈릴리 호수의 고라신 부근에 새롭게 프란체스칸 수도회에서 멋진 현대식 수양관과 성당을 건축했는데, 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자연친화적이지 못하고, 갈릴리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망치는 옥의 티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너무나 현대식이어서 그렇습니다. 360도 돌아친 회색의 정방형 대리석 건물은 화려한 스테인 글라스만 없다면, 창고로 쓰기에 딱 좋다 싶어요.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버나움에 새로 건축한 교회는, 똑같이 대리석으로 지어 올렸지만, 그 격이 다른 교회입니다.

가버나움의 교회는 아마도 기원후 1세기, 그러니까 예수님 돌아가신 후부터 4세기까지 가정교회의 형태로 가버나움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예배드렸던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기독교를 상징하는 수많은 십자가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추측이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기록에서는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예배를 드렸다고 하니, 이곳을 베드로 장모의 집이라고 부르는 것이 기독교 전통상으로는 옳다고 불 수 있습니다. 이 가정교회5세기에는 팔각형 모양의 교회로 번듯한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교회가 그러하듯이 이 교회도 이슬람의 통치 아래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식의 교회가 새로 건축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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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로 건축한 이 교회가 가히 예술입니다! 이 교회는 가버나움 마을의 회당 옆에 있는데, 교회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교회가 무슨 자기 부양술이라도 가졌겠습니까? 그것은, 역시 건축 설계자의 옛 것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5세기에 세워진 교회의 그 크기 그대로 교회를 다시 그 자리에 새로 건축하려니, 옛 교회의 터를 파헤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이렇게 중요한 기독교의 문화유산을 “신축”이라는 이름으로 없애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팔각형의 교회의 여덟 모퉁이에 기둥을 세워서 그 기둥 위에 교회를 얹어 놓는 기발한 방법으로 옛 교회의 터 위에 교회를 붕 띄워 놓은 것이지요. 옛 교회를 그대로 살리고, 그 자리에서 오늘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터를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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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 공중에 띄운 교회에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면, 그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데, 그 공간의 바닥을 유리로 만들어서, 유리 아래로 옛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5세기의 교회가 베드로 장모의 집 위에 세워진지라, 옛 교회의 터 아래에는 또다시 베드로 장모 집터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처음으로 그 집터를 보았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가 아직도 누워있는 것 같고, 지금 막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 신앙의 아버지들은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을 것이고,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주었을 거예요. 바로 이 자리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 제가 서 있는 겁니다!

가버나움의 교회가 이런 독특한 건축술로 옛 교회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듯이, 다른 교회들 역시 그 역사가 깊은 교회의 구석구석에는 옛 교회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옛 교회의 무너지지 않은 벽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 교회의 벽을 쌓아 올려서 건축한 교회들, 옛 교회의 바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교회들, 교회의 한쪽에 옛 교회의 바닥을 그대로 남겨 놓고 쉼터로 만들어 놓은 교회들. 옛 것이 보존되어 있기에 오늘의 교회가 더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바로 이스라엘의 교회에 꼭 맞는 우리의 한자성어입니다. 그러고 보면, 갈릴리의 산비탈의 중턱에 “현대”라는 포장지에 쌓여 있는 그 프란체스칸 수도회의 돌덩이는 바로 이 옛 것이 없어서 그렇게 추해 보였나 봅니다.

형과 제가 다녔던 교회는 완전히 새로 이전을 했기 때문에 옛 교회의 터를 이용할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오늘의 교회가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선교사님의 이름이 새겨졌던 기념관 팻말이나, 기념이 될 돌들이나, 나무들을 옮겨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 엄마와 같은 어른들은 그 기념 팻말이나, 돌들, 그리고 나무들을 보면서, 지금 지어진 현대식 교회가 줄 수 없는 옛 교회의 냄새를 맡아서 좋고, 옛 교회를 모르는 아이들은 그 팻말을 보면서 그 돌 위에서,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옛 교회에서 신앙을 키워왔던 어른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테니, 그야 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릿고개를 모르는 세대’니, ‘6.25 전쟁을 모르던 세대’니, 요즈음의 젊은 것(?)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많은 어른들이 계시지만, 그들 역시, 새로운 세대에게 옛 것을 제대로 물려주지 못했으니, 많은 부분 어른들의 책임 아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교회들이 교회를 건축할 때는 교회건축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전통”, 그리고 “사람”“주변환경(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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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건축헌금을 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하신다는 말을 듣고는 도대체 교회건축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소중한 것이기에 이리도 이것에 매달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학생이었던 제가 그 정도였는데, 신앙심 없고, 있어도 깊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과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교회건축을 두고 욕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라도 한 평, 두 평 내 손으로 교회를 지어 보겠다는 엄마의 순수한 신앙 앞에서는 저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대학생이던 제가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고, 꼬박꼬박 매학기 50만 원씩 350만 원 건축헌금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엄마의 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평신도도 저렇게 하는데, 신학생이 되어서 입만 살아가지고 나불거린다는 말을 듣기도 싫었을 뿐더러, 엄마처럼만 하면, 저도 하나님 만나서 좀 덜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말이에요.

비단 우리 엄마만 그랬겠습니까? 모든 우리 교회의 어머니들이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우리의 어머니들을 위해서라도 교회의 한쪽에 옛 교회의 향수를 남겨두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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