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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가버나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던 중에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또,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시기도 하셨지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서 고통 받을 때에 고쳐주셨고요. 지붕을 뚫고 내려온 침상 위에서 아파하던 중풍병 걸린 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백부장의 하인도 중풍병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에 걸린 백부장의 하인도 고쳐주셨어요.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말이지요. 12년간 혈루병으로 고통 받던 여인을 고쳐주셨고요. 아픈 사람만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이 모든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가버나움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성경에는 기적의 장소가 특정되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갈릴리의 모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다” (마 1:32-34) 라는 말 속에는 복음서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기록된 것 이상의 셀 수 없이 많은 기적들과 병고침이 가버나움이나 가버나움의 주변에서 행하여 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갈릴리 주변의 사람들이나, 적어도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와 더불어 베푸셨던 병고침과 기적을 한번 즈음은 경험해 보았거나, 직접 눈으로 목격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곧 당황스런 예수님의 저주의 말씀에 깜짝 놀랍니다.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1-24)

복음서에 기록된 수많은 놀라운 일들 가운데에서 장소가 특정되어 있는 곳으로는 가장 많이 지목된 가버나움은 분명히 예수님 의 공생애에 있어서 제일 중요했던 지역이었으면서, 동시에 주된 활동의 장이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 가버나움을 놓고 어찌 이런 저주의 말을 할 수 있단 말인지요.

서로 간에 그리 멀지 않았던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이 세 마을이 예수님의 주된 사역지라는 것이 아마 이해의 실마리가 될겁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아픈 이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들과는 다르게 쉽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에 놀라며, 조상들의 전통을 기가 막히게 해석하는 사람, 색다른 시각으로 율법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으면, 이제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변화와 기적이 있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또 다른 의미의 기적은 없었나 봅니다.

또, 기적을 행하는 사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는 특별한 사람, 더 정확히 말해서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을 의사와는 달리 아무런 대가 없이 고쳐주는 사람으로 존경했거나 따랐지만, 예수님을 메시아, 육체의 질병이나 마음의 질병 뿐 아니라, 위급한 자기들의 영적인 질병을 고치시는 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지 못한 거지요.

예수님의 입장에서 그토록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였지만, 신앙과 삶의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가버나움. 그리고 가버나움과 함께 가버나움 만큼 자주 가셨던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내뱉으신 예수님의 불호령같은 외침이 바로 그 저주의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심판의 날에 예수님을 만나게될 때,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큰 책망을 받을 사람들은 자칭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될 수 있겠습니다. 교회 만큼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만큼 하나님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 열매들이 해석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과 증언들을 마주하면서 그저 “아,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 예수님은 이런 사람, 성령은 이런 것을 허락하시는 능력”으로만 이해할 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자기 정체성도 가지지 않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범을 따르지도 않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폄훼하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름 없는 삶을 살면서도 “난 구원을 받았어.”라고 말한다면, 전혀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외식하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가버나움에 올 때면, 현재까지 발견된 갈릴리 지역의 회당 중에서 가장 큰 회당의 웅장함과 갈릴리 호숫가의 아름다움 보다 예수님의 질책의 목소리가 더 먼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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