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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 13년 6월] 맥추절의 여러가지 이름

[기독교세계 13년 6월] 맥추절의 여러가지 이름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칠칠절(שבעות 샤부옷)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샤부옷이라는 말은 영어로 번역하면 weeks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유월절로부터 칠칠절까지 일곱 주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칠칠절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명절이예요. 우리 기독교에서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듯이,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빗대어서 설명하는데, 유대인 랍비들은 칠칠절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결혼식과 같은 절기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샤부옷을 동음이의어인 맹세라는 의미로도 이해합니다. 신랑이신 하나님과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 간의 맹세가 담겨있는 율법과 그 율법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뜻이지요. 칠칠절이 시작되는 저녁에는 여자들이 촛불을 키고 명절이 시작되는 것을 알립니다. 그리고 이틀간의 칠칠절 기간 중에서 첫날 밤은 다들 잠을 자지 않고 성경을 읽고 배웁니다. 모든 남자들,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회당으로 가서는 십계명 낭독을 듣습니다.

Sinai

칠칠절의 다른 이름은 맥추절(חג הקציר 하그 하카찌르, 출 23:16)입니다. 맥추절은 말그대로 보리(밀)를 수확하는 절기예요. 농사력에 따라서 불려지는 이름이지요. 이스라엘의 날씨는 우기와 건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우기(대략 9월말부터 10월중순 사이에서 시작해서 3월말에서 4월중순사이)가 유월절에 끝나는데, 우기가 끝나면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뜨거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아랍어로는 함신(خمسون)이라고 하는데요, 숫자로 50을 뜻합니다. 유월절로부터 오십일 동안 뜨거운 바람이 불어서 우기 때에 자란 밀과 보리들이 영글면 수확을 시작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드렸는데, 그래서 초실절(יום הביקורים 욤 하비쿠림, 출 34:22; 민 28:26)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가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종파에 따라서는 십계명과 함께 다윗 왕의 직계 선조의 이야기인 룻기를 칠칠절에 읽기도 합니다.

Wheat

기독교에서는 칠칠절이나 맥추절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오순절(πεντηκοστῆς 펜테코스테스, 행 2:1. LXX πεντηκοστός, 마카비하 12:32)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합니다. 오순절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샤부옷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일텐데, 이 단어는 특별히 사도행전 2장부터 소개되는 것과 같이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성령강림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지금 예루살렘의 시온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온산(시온산성)이라는 말은 삼하 5:7에서 나오는데, 이 성경구절에 근거하면, 현재 시온산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성경과는 관계가 없는 지역입니다. 다윗이 빼앗은 시온산 위의 성은 지금의 시온산 아래에 다윗의 도시(City of David)라는 이름으로 보존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학자들은 시온산이라는 지명이 가리키는 곳은 처음에는 다윗이 여부스 족속으로 부터 빼앗은 현재 다윗의 도시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산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가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기 전(AD 68년경)에는 예루살렘성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고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 예루살렘 성 중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현재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인 것이지요. 현재의 시온산과 오순절을 말할 때마다 꼭 기억해야할 사람이 마가입니다.

Uppercity

마가(Mart the evangelist)에 대해서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그가 사도 중의 하나였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사도라는 것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말하는 거죠.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시몬, 바돌로매, 맛디아 이 열두명이 사도입니다. 바울 조차도 사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쟁이 오가는데 감히 마가가 사도라니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착각할 만한 것은 그만큼 복음 전도자였던 마가가 기독교 역사와 성경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갑자기 생각해 보니, 마가복음의 저자 이외에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마가라고 이름이 분명히 나오거나, 초대교회의 기록과 학자들 사이에서 마가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마가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역시 예수님을 따르던 기독교인이었고, 마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집을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기도 장소로 열어 두었던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행 12:12).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을 벗어나서 제일 처음 찾아간 곳도 바로 마가의 어머니의 집이었거든요(행12). 마가는 바나바와 친척이었습니다(골 4:10). 그래서 바나바는 전도 여행에 마가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바울은 여기에 반대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나뉘어져서 전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골 4:10; 행15). 베드로는 마가를 자신의 통역관처럼 데리고 다녔습니다(벧전 5:13). 그러고보면, 마가의 집안도 신앙의 집안이었고, 마가의 신앙도 대단히 좋았던 것같습니다.

마가의 직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에 나와있지 않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초대 교부들의 글에도 마가의 직업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나올 법 한데, 제가 찾은 데까지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마태는 세리였고, 누가는 의사였고, 요한은 어부였는데, 마가의 직업에 대해서는 알 수 가 없네요. 어거지로 마가가 뭐하던 사람이었다고 우기지는 않겠습니다만, 마가가 그리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마가의 집의 위치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높은 지역에 거주하였고, 그 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그 아래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을 지은 위치만 보아도 누가 더 높은 계층의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상부도시와 하부도시로 나뉘어 져있었는데, 마가는 상부도시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마가의 집이 제사장 가야바의 집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었어요. 헤롯의 궁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도 마가의 집은 가야바의 집보다 훨씬 가까웠습니다. 비록 종교적으로는 가야바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었지만, 정치 경제적으로는 마가가 가야바보다 더 상류층에 있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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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계실 때에 마가의 집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던 바로 그 곳이 마가의 다락방(2층방)이었거든요. 예수님의 안전을 보장 받기에 마가의 집만큼 안전한 곳도 없었을 거예요. 적어도 가야바가 마음대로 자기의 수하들을 유대교의 잣대로 들이닥치게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을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내 집을 빌려주었다고 마가의 신앙도 그 만큼 영글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것같아요. 이집트 곱틱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벗은 몸으로 도망한 제자가 마가였다고 하니 말입니다(막 14:51-52).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전의 마가와 부활과 승천을 지켜본 마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두려움을 물리치고 백 이십명이나 되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자기의 집 이층을 내어주고 오순절이 되기까지 함께 기도하였고(먹거리를 제공했을 테니 그 돈만 해도 대단할 텐데 말이지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에 동참한 데에다가 아프리카(현재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의 첫 주교가 되었고, 이집트 곱틱 교회(The Coptic Orthodox Church)마가를 곱틱 교회의 창시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롬(347-420AD)은 마가가 야고보가 죽던 다음 해에 순교하였다고 말합니다만, 누구에 의해서 어떤 방법으로 순교를 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해 놓지 않아서 무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Lives of Illustrious Men, ch. 2, 8). 그러나 제가 마가라면 마지막 순교의 순간에 떠올렸을 과거는 오순절(칠칠절)에 자기의 집에서 경험하였던 뜨거웠던 성령체험의 기억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겟세마네에서 벗은 몸으로 도망쳤던 부끄러운 기억이 아니었을까합니다. 맥추절을 얼마 앞둔 지금, 단지 일년에 한번 맞이하는 절기로만 맥추절을 이해하지 말고, 밀과 보리를 수확하는 기쁨 뿐 아니라,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을 되짚어 보면서 신랑이신 하나님의 신부된 우리의 신앙의 열매가 무엇인지 셈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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