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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사 석비

메사 석비

고고학은 과거의 이야기를 역사로 바꾸어 놓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신비한 힘을 존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자들, 그리고 성서학자들에게는 땅 속에서 나온 유물들이 가치를 매길 수 없으리 만큼 가슴벅찬 숨쉬는 생명체이며, 인류가 함께 소유해야만하는 선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경제적인 가치로만 그것을 판단할 뿐입니다. 이 좋은 예가 디본(Dibon: 사해 동쪽 요르단의 마을)에서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은 전문 고고학자, 또는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이 활발하게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유물을 발굴하던 시기였습니다. 특별히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분류할 수 있는 개신교 선교사들이나 로마 카톨릭, 정교회 성직자들, 그리고 베두인들은 성경과 관련된 유물을 찾기에 열정적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지나치게 경쟁적이었던 것이 문제가 되던 시기였습니다. 1868년 클라인 Klein 선교사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진 “메사의 석비” Mesha Stele 는 바니 하미다 (Bani Hamida) 족이라는 베두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땅을 지배했던 오트만 제국은 그 석비의 소유권을 제국으로 옮기려고 하였는데, 값비싸게 고고학 유물이 팔려나가던 시절, 베두인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정부에 빼앗기기 전에 한 덩이가 아니라, 여러 조각을 내 팔아버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모닥불을 피워 석비를 달군 다음 차가운 물을 붓고는 단단한 돌로 내려 찍어 석비를 조각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셨을까요? 석비가 깨지기 전, 1869년 10월에 프랑스인 동양 학자인 클레몽-간뇨 (Charles Clemont-Ganneau)가 예루살렘에서 사람을 보내어 석비의 탁본을 떠 놓은 것입니다. 깨져버린 메사 석비가 예루살렘의 유물 시장에서 팔린다는 소문을 듣고는 클레몽-간뇨는 당시 팔레스타인 탐사 기구 Palestine Exploration Fund 와 유명 고고학자들을 설득해서 그것들을 사들이고는 1891년 파리의 르부르 박물관으로 옮겨 이미 떠놓은 탁본에 맞추어 복원하였습니다.
모압어로 쓰여진 메사 석비는 모압 왕 메사가 자기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모압의 뿌리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던 사건과 함께 롯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창 19:37). 이스라엘과 혈연 관계에 있는 친족인 겁니다. 하지만, 모압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그모스를 섬기는 남이 되어 버렸습니다 (민 21:29). 이스라엘 보다 더 먼저 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왕정 체제를 만들었지만 (민 21:10-20; 신 2:9-19), 그 왕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민수기 22장 이하에서 발람을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 하려했던 발락이 바로 모압의 왕이었거든요 (민 22–24장).
이 모압에 발락 만큼이나 알려진 메사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모압은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나라였습니다. 모압은 주로 목축으로 경제 생활을 이어갔는데, 매년마다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인 아합에게 바쳤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죽은 후에 곧 이 조공을 멈추어요 (왕하 3:5). 더 이상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지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은 유다와 에돔 왕에게 도움을 구해 동맹을 맺고 모압 정벌을 시도합니다. 이 전쟁에서 벌어진 기적같은 이야기는 열왕기하 3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전쟁을 끝내고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이 전쟁이 있기 전, 메사와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전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메사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의 기록을 보면, 성경이 말하듯, 오므리 왕조(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가 모압을 다스렸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5행). 메사 석비에 의하면, 오므리 왕조로부터 40년간 지배 당했다고 하는데, 성경의 연대를 근거로 계산해보면, 북왕국의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에 이르기까지 4명의 왕들이 모압에 지배권을 행사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왕들의 기록은 대단히 역사적이었습니다.
성경은 아합이 죽은 뒤, 그 아들의 때에 전쟁을 하였노라고 서술하는데 (왕하 3), 메사의 석비 역시 6행에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또 그 전쟁의 결과도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기원전 9세기에 기록된 메사의 석비에 당대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입니다.


메사가 치룬 전쟁의 기록이 알려준 또 하나의 중요한 정보는 요단 동쪽에 갓 지파가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성경에도 요단 동편에 르우벤과 므낫세 지파와 함께 갓 지파가 정착하게 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민 32). 이 때 갓지파가 건축한 성읍 명단에 ‘아다롯’이 나옵니다. 성경과 마찬가지로 갓 지파가 요단 동편에 살고 있었으며, 그들이 아타롯에 살고 있었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메사의 석비는 전쟁 승패의 진실과 관계없이 너무나 소중한 증언입니다.
처음 이 석비가 발견되었을 때, 문학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던 연구자들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매우 후대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나, 성경에서 말하는 왕들의 역사에 대한 진실성을 의심하던 학자들은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일부 문헌학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의 포로들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형태의 종교라고 주장했더랬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9세기에 기록된 메사의 석비 17행과 18행에 떡허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또는 야웨)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겁니다.


석비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메사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느보 (Nebo) 를 점령했습니다. 느보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제단이 있었던 듯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 중에 신전에서 탈취한 물건을 자기들의 신전에 가져다 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의 사람들은 전쟁을 신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진 신을 상징하거나, 그 신전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이긴 신의 신전에 가져다 놓아, 승리를 자축하는 거지요. 마치 11-13행에서 아타롯을 점령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화로 (제단?)을 그리욧에 있는 그모스 신전으로 가져간 것처럼 말입니다.
메사는 느보를 점령한 후,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과 그 곳의 성전(또는 성소)에서 어떤 물건을 가져다가 메사가 예배하던 그모스 신전에 두어 그모스가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다고 선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자랑하면서, 석비에 새긴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름 “여호와”는 적어도 기원전 9세기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 이곳 저곳에서 등장하는 도시의 이름들과 고유 명사들이 석비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구약 성경의 역사 기록의 진실성이 확증되는 계기가 되니, 이 또한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모압 왕의 손에 만들어진 석비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성경이 더 믿음직 스러운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이 글을 쓰며 참조한 책들

엄원식. “모압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일고”. 구약논단 16: 175-201.
Archi, Alfonso. Ebla and Its Archives: Texts, History, and Society. Boston: De Gruyter, 2015.
Levy, Thomas E., Adams, Russell B., and Muniz, Adolfo. “Archaeology and the Shasu Nomads: Recent Excavations in the Jabal Hamrat Fidan, Jordan.” Pages 63-89 in Le-David Maskil: A Birthday Tribute for David Noel Freedamn. Edited by William Henry Propp, and Richard E. Friedman. Winona Lake: Eisenbrauns, 2004.
Smelik, K.A.D. “The Literary Structure of King Mesha’s Inscription.”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46 (199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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