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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 쿰란

벼랑 끝에서 – 쿰란

쿰란에만 가면, 저는 꼭 그 생각이 납니다. 약혼식을 하러 한국에 가기 전, 학교 친구와 쿰란을 잘 알고 있는 집사님과 함께 쿰란에서 성경 두루마리들이 발견된 동굴들을 일일이 다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즈음, (쿰란의 공동체 신앙의 입장에서)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사해 바닷가의 유대광야에서 메시아의 때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야하드” 공동체라 불렀는데,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정결한 삶, 금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어요. 공동체 구성원 중에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별히 서기관들이 필사한 성경 두루마리들이 1947년에 발견되면서 유명해 졌습니다. 

쿰란을 방문하면, 옛 거주지의 흔적을 돌아보게 되는데, 대부분은 정결례를 하는 정결욕조 (미크베: Miqveh)와 정결례에 사용할 물을 공급하고, 우기에 건천 (Wadi)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의 방향을 돌려서 물 저장고에 물을 대던 수로의 흔적들, 공동체가 함께 식사하던 장소와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던 방, 필사한 문서를 보관하는 항아리들을 빚고 구워내던 가마들을 돌아봅니다. 그런데, 이 거주지는 야하드 공동체가 살기 위해서 만든 마을은 아니고요, 공동체가 함께 식사하고, 예배드리고,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만든 공공 건물들입니다. 정작 야하드 공동체는 이런 건물이 아니라, 절벽 곳곳에 있는 동굴에서 주거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對)로마 항쟁 중, 마을이 파괴 되기 전에 두루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급히 그 많은 동굴 중에 몇 개의 동굴로 옮겼고, 그 중에 11개의 동굴이 발견된 거지요.  

트랙킹 하며 발로 그 동굴들을 밟아 보는 것이 제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생각 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두루마리가 발견된 첫번째 동굴을 답사하고, 두번째 발견된 동굴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인지라,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저는 좀 긴장되기도 했는데, 더 문제는 그 동굴에서 세번째로 발견된 동굴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쿰란의 동굴 답사를 이끄는 집사님이 워낙에 모험심이 넘치시는 분인지라, 길도 없는 절벽을 타기 시작한 거예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절벽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뾰족 뾰족한 쿰란의 바위들은 장갑을 끼지 않으면 잡기도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절벽에 얼마나 몸을 찰싹 붙였는지, 뽀족한 돌들에 온 몸이 쓸렸습니다.  

그러다,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절벽을 따라 내려가다가 빨을 뻗어 매달려 가는 중, 발이 땅에 닫지 않는 겁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라는 말이 꼭 맞았습니다. 그래서 급히 먼저 내려간 친구와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너무나 태연하게 “이 전도사, 손을 놔.”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은 알겠는데,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뒤는 완전 수직 절벽이기에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손에 땀이 차오르고, 좀더 간절하게 친구를 불렀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결국 매달린 절벽에서 안전하게 착지 할 수 있었는데요. 전혀 보태지 않고, 딱 10cm였습니다. 땅과 제 발이 떨어져 있었던 높이가요. 절벽에 매달려, 절벽을 잡고 있는 손 끝만 보고,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으니, 10cm인지 아닌지 누가 알았을까요? 딱 10cm 공중에 매달려서 떨리는 목소리로, 집사님과 친구를 부르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약혼식 겸, 양가 상견례 내내, 제 배의 수많은 상처들과 아물어가는 상처들의 따끔 따끔한 고통이 알려준 교훈은 “벼랑끝에서 손을 놓을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것을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손을 꼭 움켜 잡아야할지, 아니면 놓아야 할 지는 주님이 알려주시고, 저는 그저 그 분의 말씀에 최선을 다해서 귀 기울이며 용기를 내어 그 명령을 따르기만 하라는 것 말입니다. 비록 제가 절벽에 매달려 있을 지라도 말입니다. 

벼랑 끝에서

Cl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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