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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서신] 빛의 아둘람

[이스라엘 서신] 빛의 아둘람

* 이 글은 기독교세계에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기고할 당시의 글의 타이틀은 “이스라엘 서신”이었습니다. 저의 형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인데요. 그래서 중간 중간 “형”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런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의 일입니다.  첫 한 학기가 얼마나 어렵던지, 정말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하겠다는 마음에 무조건 밤 기차를 타고서는 청평으로 갔습니다. 청평에 내려서 ㅇㅇ산으로 무조건 걸었습니다. 그 밤 하나님의 음성을 꼭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산으로 오르는 어두운 밤 길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어둠 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머리카락이 쭈뼛서더라고요. 종종 개짖는 소리같은 것도 들렸는데, 혹시나 그 놈들이 제게 덤비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계속 찬양부르며 마음을 달래면서 산길을 올랐습니다. 금방 누군가 덮칠 것같은 밤길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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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은 성서에는 단 7번 나오기 때문에, 행여나 형에게 그리 낯익은 곳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다윗은 사울이 자기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자 급하게 도망을 합니다. 그리고는 놉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서 진설병과 골리앗으로부터 빼앗은 칼을 얻어가지고는 블레셋 땅 가드로 도망을 하지요. 그 후에 가드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아둘람으로 다시 도망을 갑니다. 다윗이 아둘람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다윗의 가족들과 다윗을 따르기 원하는 이들이 아둘람으로 내려갑니다 (삼상 21-22). 그 때에 다윗이 사울의 눈을 피해 숨어지내던 아둘람은 번듯한 마을과 든든한 요새가 세워져 있는 견고한 마을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기거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동굴이었던 것같아요. 그래서인지, 성서에서는 아둘람을 말할 때에, 아둘람 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삼상 22:1; 삼하 23:13; 대상 11:15).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아둘람을 가보면, 온 산이 전부 동굴 천지예요. 이 동굴은 다윗 시대에도 다윗의 도피처로 사용되었던 동굴들이지요. 어느 동굴이 다윗이 숨어있었던 동굴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동굴 중의 어느 하나는, 아니면, 이미 무너져 내려버린 동굴 중의 하나는 다윗이 숨어 지내며 숨쉬던 동굴일 거예요. 이 도피처는 세대와 세대를 거쳐 무려 1000년이 훌쩍 뛰어 넘는 기원후 2세기에도 반로마 항쟁을 하던 유대인들의 도피처로도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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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둘람을 휘돌아 가다보면, 이 동굴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띠는 동굴이 하나 나옵니다.

동굴전체에 삼각형과 사각형의 구멍이 송송 나있는데, 이것은 비둘기 집이예요. 이 비둘기집들이 모여있는 동굴은 반로마항쟁에 가담한 유대인들의 먹을 거리와 생활유지를 위한 연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비둘기는 저항군들의 스테미너 유지를 위한 먹을거리로, 그리고 그 똥들은 연료로 사용되었거든요. 이렇게 유용한 비둘기 집들을 동굴 속에 만들어 놓고서는, 동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동굴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지요. 로마 군인들의 눈을 피해서 사냥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지요. 그래서 이런 모양의 비둘기 집은 이곳 아둘람 뿐 아니라, 마사다와 같이 로마시대에 대로마 항쟁을 하던 곳에 거의 빠짐없이 발견되고 있어요.

아둘람의 동굴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굴은 한 사람이 아기들이 네발로 기어가듯이 기어들어가야만 하는 동굴인데요. 이 동굴은 마치 미로처럼 연결이 되어서 길을 모르는 사람이 동굴에 들어갔다가는 겁먹고 놀라기 쉽상입니다.

제가 처음 이 동굴을 들어간 것은 이상익 집사님과 함께 였습니다. 이집사는 이름도 저와 비슷하고, 방랑기질이 있어서 저와 죽이 잘 맞았습니다. 집사님께서 한번 가보자고 하시기에 무턱대고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형도 알다시피, 제가 겁이 좀 많나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63빌딩의 고속 엘리베이터도 창쪽으로 서지 못하는 제가 이 동굴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이, 그저 우리 나라의 석회동굴들과 같은 동굴이려니하고는 준비도 없이 따라나선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동굴에 들어서려니, 처음부터 걱정이 되더라구요. 동굴의 입구가 너무나 작아서 말이지요.

이 작은 동굴 입구로 군대에서 포복하듯이 기어들어가야한다는 것도 모르고, 그날 밝은 색의 옷을 입고 갔지 뭡니까. 하지만, 옷때문에 못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냥 기어들어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 2미터쯤 기어들어가니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거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데에다가 공기도 그리 상쾌하지 않은 것이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공포감에 숨이 턱 막힐 것같았습니다. 체면에 다시 돌아가자는 말도 못하고 동굴의 안의 첫번째 작은 공간에서 망설이면서 또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집사님을 마지 못해서 따라 들어갔습니다. 이런 동굴인줄 알았더라면, 후레쉬라도 준비했을텐데하는 후회만 하면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마지 못해서 따라들어갔어요.

어찌나 빛이 없던지, 눈에서 한번 손가락을 들이대 보았는데, 전혀 보이질 않더라구요. 이놈의 동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른채, 그냥 앞에서 가시는 집사님의 소리만 듣고서 계속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가면서 앞서가시는 집사님이 너무 빨리가시는 것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중간중간 계속해서 “집사님~”하면서 부르면서 앞에 집사님이 가시는 것을 확인하면서 따라 들어갔습니다. 이정도 되면, 정말 눈물이 찔끔 날 지경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무릅은 아프고 손바닥도 아프고, 가끔식 돌부리에 머리나 무릎을 부딪치고, 앞서 가시는 집사님의 발바닥에 부딛치기도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갔습니다. 속으로는 “에잇 이번에도 이집사님에게 또 속았네” 하면서 원망하면서 말이지요. 지난번에도 무작정 따라 나선 쿰란 길에, 길도 없는 절벽을 하루 온종일 매달리면서 온몸이 멍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차라, 오늘도 “또 당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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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넓은 공간이 느껴졌습니다. 그곳에서 집사님께서 잠시 쉬자고 하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쉬자는 집사님의 말씀에 일단은 어디 궁둥이 붙일 곳을 손으로 더듬더듬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제게 “이전도사, 핸드폰있어?”하는 것입니다. “핸드폰 있으면 한번 핸드폰 열어봐”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 동굴 속에 핸드폰 가지고 들어온들, 어디 안테나나 뜨겠습니까? 동굴 속으로 족히 30-40미터는 기어들어 온 것같은데 말이지요. 하여간에 제 핸드폰 성능이 얼마나 되나 궁금하기도 해서 핸드폰을 열었는데, 핸드폰의 액정에서 나오는 빛에 눈이 부시더군요. 집사님께서 핸드폰 빛을 후레쉬 삼아 이리저리 비춰보라고 하시기에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세상에나… 핸드폰의 액정 빛이 그렇게 밝은 줄은 처음을 알았습니다. 이리저리 비추어 보는데, 사방이 훤히 보이는 것 아닙니까? 그날 그 동굴에서 집사님과 저는 빛과 어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 동굴에서 문득 제가 1학년때의 생각이 나더라구요. ㅇㅇ산을 오르던 그날 밤 저는 참 무서웠습니다. 길이 있는 것도 확실하고, 그 길이 기도원으로 가는 길인 것도 확실한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한시간 반쯤 지났을까하는 때에 멀리 기도원의 불빛과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데, 얼마나 반갑던지요. 기도원에 뛰어들어가 그날밤 참 열심히 기도했더랬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오늘 답을 주시지 않으면, 오늘 음성을 들려주시지 않으면, 학교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습니다”하는 땡깡말이지요. 그런데, 그날 밤 한 잠 자지 않고 밤새워 기도했는데에도 아무런 음성이 들리지 않더라고요. “정말 하나님이 계시기는 하는 분인가”하는 마음에, 더 늦기 전에 대입시험 준비나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새벽 산을 내려오는데, 신비롭게 안개가 낀 골짜기와 계곡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있고, 옆에서 조그마한 개울도 흐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어제 밤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전혀 새로운 산의 모양새와 아름다움이 드러난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알게된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과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참된 모습”이었습니다. 채 스무살이 되지 않았던 제가 경험했던 그 때의 그 감격은 제가 다시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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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앞서가는 집사님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집사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집사님을 불러야했던 제 믿음 없음과, 집사님이 앞에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나, 단지 보이지 않기에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했던 제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는지…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보이지 않으나 내 앞길을 인도하고 있는 그분! 아마 다윗도 이 동굴 속에서 그 하나님을 만났을테고, 그래서 그렇게 찬양할 수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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