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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대한 성서 안의 서로 다른 신학들 (JEDP)

안식일에 대한 성서 안의 서로 다른 신학들 (JEDP)

이 정리는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성경의 JEDP의 신학이 각각 어떤 안식일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각의 신학적인 특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 자료비평 Source Criticism 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일지라도 안식일을 이해하시는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본문도 함께 다루었기 때문에 아래에 나오는 한글은 요약일뿐 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이야기 E-Book 을 다운 받으시어서 PDF전문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래에 PDF로 되어 있는 4페이지 짜리 스크린 샷도 이해를 위해서 함께 올립니다.

 

J의 안식일 (만나 이야기)

J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먹을 거리”를 주신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신뢰와 순종”을 말하고 있다. 본문은 “순종”을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순종은 하나님을 “신뢰함”과 나누어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의 머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과 신뢰”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J에서는 아침에 만나를 주는 이야기만 있고, 메추라기 이야기가 없다. 그리고 J에서만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P의 이야기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J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 (J의 Idea)를 만나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J에게 안식일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하고 하지 말아야할 일을 하지 말아야하는 이스라엘의 준수사항을 말하고 있다. 즉 J는 안식일의 목적은 “하나님을 신뢰함”를 실행하는 것이다.

J는 이 이야기를 전후해서 율법의 어디에서도 “안식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J는 자기의 아이디어를 조직화해서 어떤 법률이나 법령, 또는 일반적인 준수사항을 장래에도 지킬것으로 제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J의 스타일이다. J는 מצות 절기, 할례, 살인금지 명령, 예배의 제장, 넓적다리를 먹는 것을 금하는 것, 제사장의 율례등 거의 모든 법령에 “이제부터”라는 단어를 추가한다거나, 앞으로도 어떻게 하라는 둥의 말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J는 Law-code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J는 Law-code보다는 일상의 규범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러한 규범은 원인론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J와는 관계가 없는 본문이다.

J에서는 왜 열흘째에나, 여드레째가 아닌 일곱째날에 안식일을 지켜야하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J의 이야기는 “창조이야기”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식일의 사회적인 복지나 안녕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절제와 신뢰, 그리고 순종을 말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J는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를 모세의 시대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생계가 직접적으로  명백하게 하나님의 간섭에 기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의 안식일 이야기 (십계명)

출애굽기 20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9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3 12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쉴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여종의 아들과 몸붙여 사는 나그네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십계명(출 20)의 대표적인 E의 본문이다. 그리고 이 십계명은 J또는 P와는 어떤 연관관계도 없다. 그리고 십계명의 이야기를 보면, E의 십계명은 본질적으로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전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율법들은 모세에게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현현 Theophany할 때에 주어졌다. 십계명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이며, 이 십계명은 강력하게,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간략하게, 딱 한번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전해졌다.

안식일에 대한 율법은 이 십계명의 한 부분이다. 이 안식일에 대한 율법은 Covenant Law와 Decalogue 모두에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E는 창조의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 출20:11에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이것은 E버전의 본문이 아니다. 이것은 삽입된 구문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창조의 이야가와 연관된 일곱째 날의 안식을 준수명령은 P의 것이다. 안식일이 창조의 이야기와 연관되어서 설명되어지는 자료는 오로지 P뿐이다. E자료를 복사한 Deuteronomy버전의 십계명에서도 “안식일”에 대한 명령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보면, E자료의 십계명에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가 원래에 없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는,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라는 11절의 본문이 P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וינח ביום השביעי에서 וינח라는 Qal consecutive 동사형은 P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형태는 편집자가 출애굽기 23:12장을 차용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D의 안식일 이야기

D의 안식을 이야기는 E의 안식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E는 십계명과 십계명의 축어적인 기록들을 차용하였고, E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안식일을 설명하고 있다. D의 이야기 속에서 다른 점은 D식으로 표현한 것 뿐이다. 안식일 이야기의 D버전의 윤색은 E버전의 안식일 이야기에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첨가하였다는 것이다. D는 노예생활에 대한 기억들이 매우 중요하였다. 이러한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에 대한 기억들은 E의 박애적인 영향에 사회적인 면을 더하게 하는 요소였다.

다시한번 정리하자면, D에게는 안식일이 출애굽을 하게 하였던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념일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노예생활을 통해서 호렙에서 받았던 안식을 율법의 박애적이고도 사회적인 원리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신명기 5 12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것이다. 13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4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나,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뿐만 아니라, 너희의 소나 나귀나, 그 밖에 모든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 15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P의 안식일 이야기

일반적으로 모든 자료들이 안식일에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이렇게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P는 이스라엘이 모든 생산적인 일을 일곱째 날에는 삼간다면, 일곱째날이 거룩한 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말은 그 일곱째 날이 하나님의 날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에게로 바쳐진 사람들, 물건들, 단어들이 거룩한 것과 같이 시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E와 D에서는 “쉬는 날”로, J에서는 “절제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날”이 P에서는 “거룩한 날”이 되었다.

P는 안식일이 “하나님이 소유하는 하나님의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용할 수가 없다. 성소의 안이나 성소 밖의 뜰이나 어느 곳에서든지 제사가 드려져야하는 날인 것이다. 사실 만들어질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거룩한 것은 없다. P는 그렇기 때문에 “거룩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있다. 다른 자료들은 이러한 “거룩함”의 정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P는 어떤 사람, 내지는 사물따위가 “거룩하게 되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거룩해지는 것은 “성별” consecration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성소와 제사장들은 기름부음과 기름부음에 해당하는 특별한 의식을 통해서 거룩해지고, 제물들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성스러운 장소와 접촉contact함으로 거룩해진다. 시간은 하나님이 특별한 절기를 모세에게 말해줌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다. 만약에 시간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어진다면, 매주마다 일곱째날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 안식일은 어떠한가? 오로지 P만이 안식일을 “창조”의 이야기와 연관시킨다. 그리고 7이라는 숫자의 체계 안에서 일곱째날을 안식일로 삼는다. 왜냐하면 P만이 “거룩한 시간”의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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