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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서신] 갈릴리바다?

[이스라엘서신] 갈릴리바다?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마 8:24)

마태복음 8장 24절!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좀…. 형, 우리 집이 춘천이잖아요. 호반의 도시! 제가 춘천에서 살면서, 공지천의 수많은 오리 배들과 연인들을 위한 작은 배들을 보아왔지만, 장난을 치다가 보트가 뒤집혀서 죽은 사람들은 있었을지언정, 의암호와 공지천에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혀서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형은 혹시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여름 수련회 때에 성경 퀴즈를 할 때면, 꼭 “갈릴리 바다” 또는 “갈릴리 호수“라고 불리는 이 문제의 장소가 민물인지, 아니면 짠물인지를 물어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보질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압니까만은, 꼭 문제를 맞히어야 맛입니까? 그냥 웃고 넘어가자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왜 호수를 바다라고 부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기를 갈릴리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당시에 바다에 가본 적이 없어서, 바다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넓은 이 호수를 보고서는 바다라고 불렀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말로 갈릴리 호수의 둘레가 무려 54킬로미터가 된다니 (트랙킹을 하면 60킬로미터를 걸으니, 걸어서 호수 한바퀴를 걷기에는 벅찹니다.), 호수라고 부르기에는 정말 큰 호수이긴 합니다만, 정말로 그 이유 때문에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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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는 북쪽 이스라엘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은 해변, 에돔길로 가는 교차로였습니다. 그래서 북쪽의 갈릴리는 이방인들의 왕래가 잦았던 곳입니다. 해변을 걸 어오면서 지중해 바다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에 와서, “이야 정말 멋진 호수네, 정말 크구나!”라고 말을 할망정, 바다와 호수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바다에 대해서 무지해서 이 넓은 호수를 바다로 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꼭 이스라엘에 한 번 와 봐야 한다니까요.

이 갈릴리는 또 헷갈리는 것이, 이름이 너무나 많습니다. “갈릴리”라고도 부르고, “긴네렛”이라고도 부르고, “디베랴”라고도 부르니 말입니다. “갈릴리”라는 것은 원래 이 지역의 이름입니다. 갈릴리 지역에 있는 호수이니, “갈릴리 호수”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긴네렛”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통 악기인데, 호수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호수의 모양이 이 전통 악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긴네렛 호수”라고 불립니다. “디베랴”라는 이름은 갈릴리의 가장 큰 도시인 “티베리아스”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인데, “티베리우스” 황제의 이름이 우리말 성경에서는 “디베랴”가 되어 버렸네요. 그 이름이 “갈릴리”이든, “긴네렛”이든, “디베랴”이든 다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왜 이 멀쩡한 호수를 “바다”라고 부르냐는 거지요.

마태복음 8:24에 아주 저를 당황스럽게 만든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에 큰 풍랑이 얼어나서, 배가 물결에 막 뒤덮일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랍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바다”라고 말하지만, 이곳이 “갈릴리 바다”라면 사정이 다르지요. 갈릴리 바다는 호수아닙니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뒤집힐 정도라니요. 오리 배도 안 뒤집힐 호수에 제자들과 함께 탄 배라면 적어도 승선 신원이 13명은 족히 넘을 그 배가 뒤집힐 지경이라니, 이걸 믿으라는 겁니까 말라는 겁니까? 차라리 월남 스키부대출신이라는 말을 믿으라지. 그래서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에 나와 있는 이 말씀은 좀 의심이 가더라고요. 요즈음 말로 좀 뻥이 심한 것이 아닌가요?

1986년 어느 여름날 이스라엘에 가뭄이 무척이나 심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물이 말라가고 식수가 없어서 터키로부터 커다란 물풍선을 배로 끌고 들어와서 이스라엘의 식수를 해결하던 그 때에, 갈릴리 호수의 수면도 몇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을 칠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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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유발이라는 두 형제가 “긴노사르”라는 키부츠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부인 이 두 형제는 호숫가에 나갔다가 물 아래에 마치 배 모양의 검은 그림자를 보았지요. 곧바로 경찰에 먼저 신고를 했답니다. 무언가 수상쩍으니 말이지요. 전문가들에 의해서 이것이 고대 배의 조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키부츠 긴노사르의 사람들과 이스라엘 고고학 유물당국, 그리고 이 배와 관심을 가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 배를 인양하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2일 밤낮에 걸친 작업으로 드디어 이 배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길이 8.2미터폭이 2.3미터, 그리고 높이가 1.2미터가 되는 이 배의 나이는 약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70년에 이르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예수님의 시대와 맞아 떨어지지요. 약 15명의 사람들이 오를 수 있는 이 배의 용도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배가 갈릴리의 어부들이 타던 배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반 로마항쟁 때에 침몰한 군인들의 배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어느 말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에 이 배가 예수님 당시의 배이고, 당시의 사람들이 타던 배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게다가 마태복음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두 함께 오를 수 있는 배였다면, 적어도 이 배만하거나 이 배보다 약간 더 큰 배가 아닐까합니다. 지금도 키부츠 긴노사르에 가면, 이 배의 실물을 그대로 볼 수 있답니다. 이 배를 보고나서는 마태복음 8:24의 말씀에 더욱 의심이 생기더란 말입니다. 이 배가 어떻게 호수의 물살에 뒤집힐 수 있냐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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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갈릴리 주변에 있는 한 호텔에 가게 되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호텔의 상점에 진열된 엽서들이 꽂혀있는 스탠드를 돌리면서, 어디에서 사진을 찍으면 멋질까 이리저리 엽서들을 보던 중,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풍랑이 일어나 호수 부둣가를 때리는 거대한 파도의 사진이었습니다. 눈에 익은 그 부둣가에 그렇게 거세고 높은 파도가 일어나서 때린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게 합성인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아무리 유심히 보아도 합성이 아닌 것은 확실했습니다. 부랴부랴 이스라엘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비디오도 촬영하고 사진도 찍으시는 집사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실제로 그런 파도를 본 적이 있냐고 말이지요. 그 집사님은 10년을 넘게 살면서 갈릴리 호수에 그런 파도가 치는 것을 딱 한 번 본적이 있는데, 집사님이 듣기로는 파도 높이의 최고기록이 호숫가에 있는 호텔의 10층 창문에까지 물방울이 튀긴 것이랍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갈릴리에서 배를 운전하는 유다라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풍랑이 이는 날에는 승선인원이 80명이 넘는 큰 배도 안전하지 않다고 하네요. 재빨리 안전한 방파제 안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배가 전복이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5년 전에는 승선 인원이 55명인 관광용 목선이 전복이 되어서 대단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그러더군요. 대단하지요?

이 이야기를 잊어버릴 때 즈음 아내와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온 한국 사람들이 타는 큰 목선에 양해를 구하고 우리 부부가 끼어 탄 것입니다. 호수에 물결이 이는 아침 일찍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기 전에 물살이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나 호수 동편에서 호수 서편으로 가는 배가 뜨자마자, 배가 얼마나 요동을 치던지 겁이 무척 많은 저는 배의 제일 가운데 기둥을 붙잡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배의 앞머리에서는 연실 파도가 깨지며 물방울이 솟구쳐 올라서 배 안으로 쳐들어오고, 배가 하늘로 솟았다가 꺼지기를 연실 되풀이 하는데, 아내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는 것 같다고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어린아이 마냥 환호성을 지르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제 손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말입니다. 아내에게 장난 그만치고, 빨리 안전하게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호통을 치는데, 도리어 제게 참 겁이 많다고 놀리더군요. 호수의 절반을 지나오면서 점점 아르벨 산이 병풍이 되어주면서 점점 바람이 줄어들더군요. 이제는 좀 살았다 싶었습니다. 하여간에 제가 겁이 많은 건지, 아내가 겁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그 파도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장 아저씨도 원래 배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가다가는 파도에 맞아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며, 원래의 항로에서 빗겨나는 길로 운항을 해야 했으리만치 험한 파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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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로는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들을 정말 의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성경을 의심한다는 것은 결국 제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경험에 의존해서, 제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게 던지는 물음표인데….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제가 경험한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지요.

호수이지만, 그리고 상식적으로 호수에는 배가 뒤집힐 정도의 풍랑이 일지 않지만, 상식을 뒤엎고 풍랑이 일고, 커다란 배들이 뒤집힐 만한 파도가 넘실거리는 호수. 그래서 바다라고 불리는 호수. 그곳이 갈릴리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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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Has 14 Comments
  1. 경험에서 묻어난 생생한 묘사가 바다를 건너야 육지에 갈 수 있는 저의 마음에 호응이 됩니다.

  2. 성경의 내용은 비유를 많이 썼습니다 배를 타고 제자들과 같이 간 말씀 은 진짜 배를 말하는게 아니라 뜻을 함께 한 제자들 이 지금의현실를 두렵고 힘듬 을 예수님께 의심하며 애기 하는 내용 입니다 한배 를 타는데 나를 믿고 이 뜻을 전하자는 주님의 말씀 을 믿음 이 없는 제자들 에게 믿음을 말씀하신 겁니다

    1. 좋으신 댓글 감사합니다.
      진짜 배를 말하든, 그렇지 않든, 예수님께서는 무언가를 이야기하실 때에는 모두가 나는 자연현상이나, 문화적인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적의 이야기를 “진짜 배가 아니다.” 라고 단정지어서만 생각하지 마시고, 좀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면, 좀 더 풍성한 성서읽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3. 시대적인 상황 은 틀릴수 있지만 성서 에서 가장 중요한것 진리 하나님 의 뜻입니다 예수님 이 전하는 게 무엇인지 를 정확히 알아야 누군가 에게 전할수 있는겁니다. 칼 끝에 선듯 이 해야 합니다 아니면 여럿 골로 갑니다

  4. 갈릴리 호수 에서의 주님의 말씀 메세지는 글쓴이 의 그 시점 믿음을 전하는거 같습니다 그 풍랑이 바다의 풍랑 이 아니라 마음의 풍랑 이란걸 또 그걸 확인 하러 그 먼 바다 까지 가서 기여히 확인하고 온 글쓴이 의 믿음 을 예수님 이 제자 들 에게 말씀 하신듯 이 글쓴 이 에게 전하셨네요

  5. 올려주신 견해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의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것에 대해서 제가 길고 자세하게 쓰지 않아서 제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가지 오해가 있으신 것은 김기배 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비유로 읽는 것에 대해서 제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기록할 때에, (1) 예수님의 입장에서의 관점, (2) 성서의 기록자의 관점, 그리고 그 (3) 성서를 읽는 당대 독자들의 관점 (4) 예수님의 이 기적의 이야기를 정경으로 받아들인 이들의 관점등 여러가지 관점에 대해서 두루 생각해 보면, 좀더 풍성한 성경 읽기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성서를 이해할 때에는, 기록자 또는 독자의 문화적인 배경이 전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해 주신대로 “비유”로 읽는 것도 이런 다양한 성서 읽기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지요. 다음에 좋은 견해 올려주실 때에는 오해가 있지 않도록 답글을 써서 올리겠습니다. 

  6. 제가 애기 하고 싶은건 비유든 사실이든 갈리리호수 든 한강 이든 그게 중요하게 아니라 주님의 진짜 뜻이 무엇 이냐 입니다. 제가 쓴 윗 댓글 을 계속읽어 보세요 학문적 으로 풀다 보면 진리 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받길 기도 합니다

    1. 제가 읽기로를 말씀하신 논지가,

      (1)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비유”로 읽어야 한다. “진짜로 배를 타고 나가신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Posted on 2014/07/20 at 6:32 오후 참조).
      (2) 그런데, 두번째에는 글쓴이의 시점에서 “호수의 풍랑” 아니라, “마음의 풍랑”을 말씀하고 싶으셔서 그 먼 바다까지 기여히 “진짜 배를 타고 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Posted on 2014/07/21 at 2:21 오전 참조).

      (1)번과 (2)번이 말씀하신 논지가 다릅니다. 처음에는 “진짜 배”가 아니라고 하셨다가 다음에는 “진짜 배”를 타고 나가셨다고 하셨습니다.

      또, 마지막 김기배님께서 말씀하신 논지는 (3) 갈릴 호수에서의 주님의 말씀의 메세지는 “글쓴이”의 시점의 믿음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Posted on 2014/07/21 at 2:21 오전 참조). 그런데, 갑자기 [Posted on 2014/07/21 at 5:57 오후] 에서는 “주님의 진짜 뜻” (글쓴이가 아니라,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교회의 성경공부에서하는 “영해”나 “기초적인 성경연구”가 아니라, “정경비평”적으로 보시다가 갑자기 ‘주님의 뜻'(영해)로 가시니…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도무지 김기배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지 중심이 잡히지를 않네요. 말씀하시는 것을 성경공부를 나름대로 하실려고 노력하신 분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성경을 다양한 관점에서 읽어보시고, 글쓰시기 이전에 먼저 논지를 정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설교집이 아니라, 주석책들을 참고해서 보시면 성경에 대한 자기만의 이해를 넓혀 가는데에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7.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 이 강하시네요 그럼 간단하게 제 논지는 그 글 읽은 사람들 한테 갈릴리 호수 까지 갈 필요없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현실에 충실 하라는거죠 거기에 뜻이 있으니깐요 성경은 단지 알려만 줄뿐 입니다

  8. 추가로 글 쓴이 는 성경을 쓴 사람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저한테 애기 하신 님 을 말하는 것입니다

  9.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언덕을 등지고 전하기도 하시고,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하신 적도 있는데, 이게 바람의 방향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예전에 어떤 분이 갈릴리 호수가의 호텔방에서 호수 한가운데 있는 어부들의 말소리도 들렸다고… (과장이 좀 첨가됐겠죠? ^^) 하셨는데, 그럼 배에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는 아침이고, 언덕을 등졌을 때는 저녁 때였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게 맞나요? ^^ 마니슈마~~?

    1. 그렇게들 이야기합니당~
      잘 지내지? 보고싶다. 언제 이스라엘 올꺼야. 나는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꼭 논문을 마치고 싶거든. 그 전에 꼭 와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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