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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서신] 부모의 책임이지 누굴 탓하겠습니까?

[이스라엘 서신] 부모의 책임이지 누굴 탓하겠습니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에 “농사 중 가장 중요한 농사가 자식 농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빠가 되고 나니, 왜 그렇게 아빠 엄마들이 아이들의 교육에 열을 내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이제 10달밖에 안 된 노엘이가 한국에서 자란다면, 분명히 머지않아 ‘조기 교육’이 어쩠느니 하면서, 자기들 회사의 자랑들을 주욱 늘어놓는 학습지 선생님들이 글자도 모르는 노엘이의 조기교육을 들먹이며 찾아오지 않을까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주는 것은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들에게 을 남겨주기도 하고, 명예를 남겨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전에 갚지 못한 을 넘겨주는 경우도 있는가하면,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남겨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남겨줄 가장 큰 유산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을 아는 신앙” 아닐까요? 게다가 자녀들의 신앙이라는 것이 결국 그 부모를 따라가기 마련이니, 정말 큰 부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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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람을 찾아보라면, 저는 가장 먼저 “엘리”를 꼽겠습니다. 엘리는 실로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이었습니다(삼상 1:3). 우리말 성경에서는 무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최초로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이 실로에 있었고, 엘리는 그 성전에서 제사장 일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성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오헬 모에드” אוהל מועד 라고 하는데, 삼상 1:9에서는 “오헬 모에드”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고, “헤칼 아도나이” היכל יהוה 라고 부르고 있고, 헤칼이라는 말은 궁전과 같은 건축물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솔로몬 성전 이전에 실로 성전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꽤나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파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는 최초의 하나님의 성전이 실로에 세워졌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최초의 수도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실로였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예전의 실로는 매년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날마다 드리는 제사로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던 분주한 곳이었지만, 지금의 실로는 국제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영토에 속해 있어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성서적으로 실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서는 실로에 정착촌을 만들어서 옛 실로가 있던 곳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실로에 가봤자 폐허뿐인 돌무더기만 가득했는데, 요즈음은 실로가 어떤 곳인지를 알리는 영상물과 그곳에 있었을 성전의 모형, 그리고 유세비우스 시절에 처음으로 세워졌던 교회의 터들을 발굴하는 작업으로 매우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전의 영화를 되찾았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마치 새롭게 숨쉬기 시작하는 실로를 보는 듯합니다.

이곳 실로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인 이들은 옛 제사장들의 전통을 따라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앙적인 확신 없이 가업처럼 굳은 제사장 노릇을 감동 없이 답습하는 것과, 세대를 걸쳐 한 집안이 이끌어 간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는 것을 율법으로 정해 놓으셨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제가 홉니와 비느하스가 했던 제사장의 일을 “제사장 노릇”이라고 말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제사장 같으나 실상은 사기꾼에 불한당이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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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의 아들들은 그 하는 일이 옳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사장이 된 아들들은 자기들이 지켜야 하는 규정(레 7:28-32)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규정들을 어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져오는 제물 가운데에 분명히 제사장의 몫이 있습니다. 율법에서 제사장의 몫은 가슴 고기오른쪽 넓적다리(레 7:31-32)입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살이 세 개 달린 갈고리를 들고 와서는 냄비나 솥이나 큰 솥이나 가마솥에 갈고리를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 것으로 가져가 버렸습니다(삼상 2:13-14). 그뿐인 줄 아세요? 이 불한당 같은 자들은 자기들의 종을 시켜서 아직 제사가 끝나지도 않은 날고기를 가져갔습니다. 율법을 지키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의 것을 강탈해 갔다는 거지요. 성경에서는 이 날고기를 가져가서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만약 이 날고기를 그냥 먹었다면 고기를 먹을 때에 피째로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까지 어긴 셈이 됩니다(레 7:26-27). 그야 말로, “막 나가는 자들”이지요. 이쯤 되면 엘리가 아들들을 불러다가 호통 한번 치고, 때려서라도 가르치는 독한 마음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하나님보다 아들이 먼저였던 거지요(삼상 2:29). 이 불경한 가족의 결말은 잘 아실 겁니다.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었고(삼상 4:11), 엘리는 아들들의 죽음의 소식과 하나님 궤를 잃어버렸다는 보고를 듣고는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잖아요 (삼상 4:17-18).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가족의 이야기는, 마치 한 가정의 비극적인 결말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 한 아버지의 빗나간 자녀 사랑이 한 가정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겨 버리는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있어야 할 곳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도시인 아스돗과 가드, 에그론을 전전해야 했으니 말입니다.(삼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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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실로에는 성전의 건물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성전이 있었던 옛 터조차도 어디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남아 있는 유적이라고는 몇몇 돌무더기와 올리브 기름을 짜던 기름틀뿐인 이 실로가 옛 이스라엘의 첫 수도였으며, 하나님의 성전이 처음 있었던 곳이며, 이스라엘의 온 지파들이 모여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의 영토를 나누던 이스라엘의 중심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몇 명이 이 말을 사실로 받아들일까요? 그때 엘리가 그 아들들을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쳤었더라면, 오늘의 실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돌덩이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주인이 되어버린 실로에 올라서니, 누구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는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됩니다. 엘리처럼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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