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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교회 Pater Noster

주기도문 교회 Pater Noster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신성과 인성, 모두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만 치우쳐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인성, 그러니까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정과 느낌, 욕구들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감히 성전 마당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보시고는 옳지 않은 것 앞에서는 분노하셔서 그들을 내쫓으시고, 의자를 둘러 엎기도 하셨고 (막 11:15-17),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슬피 울기도 하셨습니다 (요 11:1-44). 백부장의 믿음 앞에서는 감탄하시기도 하셨지요 (마 8:5-13). 죽음 앞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리기도 하셨고요 (마 26-36-56). 손으로 꼽을 수 없으리만치 많은 이야기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처럼 인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또는 에둘러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쉼이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피곤하셨을 테니까요 (막 6:30-32). 그래서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있으시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가운데로 나가기도 하셨고, 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어느 조용한 곳에 계시기도 했을 겁니다. 이스라엘의 곳곳을 다니다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주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곳을 기념하는 곳은 동굴들입니다 (여리고, 타브가, 감람산 등등). 이 곳은 예수님 육신의 쉼의 장소이자, 영적으로 재충전하며 조용히 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한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세요.” (눅 11:1) 라고 부탁합니다. 아마 요한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님인 요한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기도해야하는 것이 좋을 지 물어보고 요한이 가르쳐 준 기도를 했었나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도대체 어떻게 기도하시는지, 그리고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새번역)

예수님처럼 기도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일 겁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만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그러나 어느 사이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예배 시간이 되면, 습관적으로 암송하는 그저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기도문에 대해서 예전에 한창 인터넷에서 “한 우루과이 성당의 벽에 쓰여진 기도문”이라는 이름으로 읽었던 그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늘에 계신”이라 하지 말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여”라 하지 말라. 아들 딸로서 살지도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 하지 말라. 자기 이름만 빛내려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에 임하옵시고”라 하지 말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지 말라. 자기들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지 않느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만 찾아다니지 않느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를 따라, 그 외양을 모방하는 것은 아마도 조금 노력하려는 열의만 있다면 그나마 쉬운 편에 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겉모습을 따라 흉내 내는 것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는 이 기도를 주문처럼 외우라고 알려주신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교회 밖의 삶에서 지쳐 힘들고, 그 고단함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나의 정체성을 잃어갈 때에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기억하게 하는 이 기도는 단지 “말”이상의 것이었을 겁니다.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치고 힘들고, 예수님 주변의 정돈되지 않은 환경에서 잠시 떨어져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닥친 복잡한 상황 속에서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은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사람이 겪어야했던 희노애락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기도하셨을 예수님. 그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면서, 오로지 인성으로만 똘똘 뭉친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예수님만큼 기도하지 않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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