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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의 잡다한 성탄절 질문들 [2] 탄생 년도와 동방박사의 별

사실, 이 년도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몇 년에 태어나신 것이 우리의 신앙을 바꿔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꼭 이걸로 교회에서 아는 척하는 청년이나 청장년들이 한두명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목회자를 난처하게 만들지요. 이 참에 “내가 몰라서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과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며 기선제압하실 수 있도록 데이터들을 풀어 놓겠습니다.

 

A.D.와 B.C. 흔히들 기원전과 기원후를 이야기할 때에 B.C.와 A.D를 사용합니다. B.C라는 말은 Before Christ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탄생 이전을 말하고, A.D는 anno Domini (우리 주님의 해 in the year of out Lord)의 약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신 해로부터 세는 년도의 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년도 표현방법은 525년에 만들어져서 800년에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요즈음 학계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학계에서는 B.C.E.(Before Common Era)와 C.E.(Common Era)를 사용합니다. 종교성도 배제하고 예수님의 탄생년도에 대한 불확실성도 배제하는 방법이지요.

 

세가지 다른 학설 그럼, 정말 예수님께서는 AD 1년에 태어나신 것일까요? 예수님의 탄생년도에 대해서는 세개의 학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2 B.C.E.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4 B.C.E.에 태어나셨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7 B.C.E.에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7 B.C.E.가 더 성서에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헤롯대왕이 죽은 때가 4 B.C.E.이고, 헤롯대왕이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서는 두 살이하의 어린 아기들을 죽였다는 것(마 2:16)은 아마도 헤롯이 죽기 전 최소한 2년 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에서 입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를 잠시 접어두고 먼저 한가지 학설을 걷어내겠습니다. 2 B.C.E.설인데요,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이유는 2 B.C.E.에는 이미 헤롯대왕이 죽고 난 후였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4 B.C.E.냐 7 B.C.E.냐의 문제만 남게 됩니다.

 

별들에게 물어봐~ 오늘날과 같이 전세계가 한개의 공통달력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각 나라마다 때로는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달력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근동지방의 달력은 저마다 제 각각입니다. 어떤 나라는 왕의 치세를 기준으로 원년, 1년, 2년, 3년 이렇게 나가기도하고, 또 어떤 나라는 원년이 없이 그냥 1년, 2년, 3년 이렇게 년도를 세기도 합니다.

공통점은 왕의 통치기간을 달력으로 삼았다는 것인데요. 자기들 나라에서 자기들 끼리만 그 달력을 사용하면, 년도를 계산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와 서로 비교해서 그것이 그래서 오늘날의 달력으로 언제인지를 알려면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나라들 간의 전쟁 역사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윗왕 95년에 고구려와 전쟁을 했다.”라는 기록이 이스라엘에 남아 있고, 고구려에서도 “장수왕 5년에 다윗과 전쟁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면, 다윗왕 95년과 장수왕 5년이 같은 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역사의 연대구성을 해 나아가는 방법이 있지요. 그런데, 맨날 나라가 전쟁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정확한 방법이 각 나라의 별자리 연구에 대한 기록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박사 (μάγος) ‘마고스’라는 말은 페르시아의 천문학자 또는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학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박사들이 천문학자들일 것이라는데에 의견을 거의 함께 모으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시대의 천문학자들의 주 업무는 별의 이동과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신이 왕에게 주는 계시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마고스’였고, 별들의 움직임과 모양새들이 신의 계시를 드러낸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갑자가 페르시아 시대에 생긴 것은 아니고요. 기원전 2000년 전의 바벨론에서도 이와 같은 별자리 연구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태어나 별자리가 그 사람의 운명을 드러낸다는 점술들은 벌써 기원전 2000년 전에 바벨론에서 유행하던 것이었으니 그 역사가 4000년이 되네요. 이 중에서도 별자리의 기록들이 가장 잘, 그리고 많이 기록되었던 시기는 220 B.C.E부터 75 C.E.사이였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나? 그럼 박사들이 본 별들은 무엇일까요? 망원경이라는 것이 만들어 진것이 중세 르네상스 시대부터였으니, 박사들은 육안으로 별자리를 관측했습니다. 사람의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큰 별(항성)들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입니다.

박사들이 본 별에 대해서 학자들은 세가지 가설을 내어 놓습니다. 첫번째는 핼리 혜성 (Halley’s comet)입니다. 그런데 핼리 혜성일 확률이 없는 이유는 이 혜성이 등장한 년도가 12 B.C.E로 너무 이른 데에다가 성경에 보면, 큰 별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에 머물러야하는데, 아시다시피 혜성은 계속 움직이지요. 그래서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학설입니다.

두번째는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현상입니다. 매우 밝은 빛을 내는데요. 이 현상이 목격된 것은 2 B.C.E.입니다. 맨 처음에 년도에 대한 학설을 내어 놓으면서 2 B.C.E.를 주장한 학자들이 바로 금성과 목성이 만나는 현상이 성경에서 말하는 큰 별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인데,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때는 벌써 헤롯대왕이 죽은 후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세번째는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현상입니다. 이 세번째 학설은 이미 1604년에 케플러(아시죠? ㅋㅋㅋ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동시대 사람으로 “행성운동법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지요.)가 예수님의 탄생 별과 관련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목성과 토성은 천제에서 가장 밝은 별과 그 다음으로 밝은 별입니다. 이 두별이 만나게 되면 그 빛의 밝기가 달의 1/3수준이라는 군요. 광야에서 보름달이 뜬 밤이면 큰글자 성경을 그냥 읽을 정도로 밝은데, 그 밝기의 1/3 수준이라면 광야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밝은 빛입니다.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현상은 800년에 한번씩 나타나는데요. 그 현상이 바로 7 B.C.E.에 있었습니다. 이 두 별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더라도 가깝게 위치해서 매우 밝은 빛을 내는 것은 11개월 동안이고, 이 11개월 동안 세번에 걸쳐서 태양-지구-목성-토성의 순서로 일직선으로 서게 되는데요. 학자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그 때가 7 B.C.E. 5월 27일, 10월 6일, 그리고 12월 1일이었습니다.

 

결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 년대는 7 B.C.E.로 학자들이 추정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헤롯대왕이 죽은 때가 4 B.C.E.이고, 헤롯대왕이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서는 두 살이하의 어린 아기들을 죽였다는 것(마 2:16)은 아마도 헤롯이 죽기 전 최소한 2년 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별의 움직임상 7 B.C.E.가 성서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매우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한 크고 밝은 별은 태양-지구-목성-토성이 일렬로 서는 때에 목성과 토성이 밤하늘에서 서로 겹쳐져 밝은 빛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서비스로 부록을 달아봅니다. ㅋㅋㅋ

그럼, 왜 박사들은 먼 페르시아에서 유대땅까지 왔을까요? 목성은 가장 밝은 빛을 내는 행성으로 마르둑을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토성은 두번째로 큰 빛을 내는 행성으로 왕을 상징하였지요. 그리고 물고기 자리는 지혜, 생명, 그리고 창조의 신인 에아를 상징합니다. 목성과 토성의 큰 두개의 빛이 하나로 합쳐져서 물고기 자리를 지나가는 것은 근동지방에서 두가지를 의미했습니다. 하나는 옛 세계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신에 의해서 선택된 새로운 왕의 탄생입니다.

알렉산더와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명맥을 이어오던 마케도니아 영향 아래에 있던 제국들이 64 B.C.E.에 완전히 멸망을 하고난 후에 유대 땅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로마 제국의 “시리아”라는 행정구역 아래 편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로마의 세력이 변방의 나라들에게까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던 시기는 아니었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27 B.C.E.에 강력한 로마제국을 구축하고 명실상부한 제국의 패권자가 되었지만, 지중해의 동쪽지역에서는 아우구스투스를 이전에 있었던 셀류커스 왕조처럼 황제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황제는 신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중해 서편의 서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은 신에 의해서 지명을 받은 합법적인 왕이 등장해서 더 나은 제국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 있었던 메시아 사상과 상통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런 왕을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이런 메시아 사상은 요세푸스의 기록과 사해사본에서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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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Has 2 Comments
  1. 음…누가복음의 탄생이야기랑 비교하면 어느게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울까요?

    1.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신약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릅니다. ^^; 복음서에서 역사적인 사실, 그것도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 (Historical fact)를 물어보신다면, 제가 알려 드릴 것은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주어진 성경 안에서 그 사건과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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