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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2] 첫번째 사사 옷니엘

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2] 첫번째 사사 옷니엘

이 글은 2019년 봄 성서학연구소 BIBLIA가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와 함께 진행한 “사사기-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정리는 강의를 읽기 쉽도록 정리하였고, 중간 중간 혹 정확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내용이 삽입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 강의를 하다가 실수한 부분은 교정을 하였습니다.

사사기를 설명하는 책들에서 꼭 한번쯤은 나오는 ‘사사기의 순환구조’의 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사사 옷니엘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사사 옷니엘의 이야기만 가장 균형적인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다른 사사들의 이야기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혹 이 구조에 맞추어 넣을 수 있을지라도 어느 한 부분이 비대칭적으로 장황한 구조입니다. 그러면에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옷니엘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의 이야기의 기본틀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옷니엘의 이야기에서 사사 시대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했을 수도 있겠네요.

❖ “옷니엘”이라는 이름

“옷니엘”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어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로는 “오트니엘”이라는 이름을 עתניאל 이라고 쓰거든요. 모양만 보아도 이 이름은 עתני(오트니)라는 말과 אל(엘)이라는 말이 연결된 형태입니다. 그런데, עתן 이라는 어근이 히브리어에는 없어요. 그래서 옷니엘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요, ע(아인)하고 א(알렙)하고 종종 혼동하거나 혼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עתן이 아니라, 어근 אתן에서 옷니엘의 이름이 가진 뜻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사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제시한 “옷니엘”이라는 이름의 뜻,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라는 설명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옷니엘의 의미가 정말 그렇다면, “옷니엘”이라는 이름에는 대단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사사의 시대에는 이방인들과 결혼하던 시대, 우상을 떠받치던 시대라고 3장 1절부터 6절까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들 그 땅의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를 때, 옷니엘은 그것들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장한 이름을 가진 이가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됐다라는 것은 절대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 옷니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1)

옷니엘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살던 시대를 되짚어 보아야하겠습니다. 3장 7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의 목전에”(בְּעֵינֵי יְהוָה “베에이네 아도나이”)라는 고어체 표현을 쉽고 정확하게 요즈음 말로 다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눈에”라고 고쳐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는 행동거지가 하나님의 눈에(보시기에) 옳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악해 보인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악한 길로 가는 이유,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이유, 우상 숭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고, 자기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좇아 살았기 때문이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가나안에 살던 사람들이 누리던 물질문화 생활은 광야에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문화사적으로도 한 곳에 정착하는 농경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리고 살았던 것이 분명하니까요. 시대를 너머서 물질 문명의 화려함은 늘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만난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즐기고 있는 물질 문명이 좋아보이고, 그들이 누리는 문화가 더 나아 보였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보기에 좋아보이는 가나안의 것들을 선택하던 시대가 사사들의 시대입니다.

❖ 옷니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2)

어느 누구를 좋아하다보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좋아보이고, 그가 하는 행동 모두가 좋아보이게 마련이지요. 요즈음 아이돌들을 좋아하는 제 큰 딸이 아이돌이 하는 악세사리나, 아이돌이 광고하는 물건, 음료를 사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냥 다 좋은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것들을 가나안에서 맛보았습니다. 이제 그 땅에서 이미 그보다도 더 안정적인 문화를 향유하며 살던 사람들을 좋게 보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아보이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섬기는 신들까지요. 시대적으로는 사사들의 시대보다 대략 300여년 뒤의 일이기는 하지만, 고대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는 두 시대가 마찬가지였을 이야기 소개해 볼까요?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왕상 20:23) 아람왕 벤하닷이 아합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승리했어요. 위의 성경 구절은 벤하닷이 전쟁에서 패한 후에 그의 신하들이 벤하닷을 위로하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아람 사람들의 눈에는 이스라엘 하나님은 “산의 신”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들 가운데에는 유독 눈에 띄는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였던 모리아 땅의 한 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산,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 아론이 죽은 호르 산, 모세가 죽었던 느보산의 비스가, 여호수아가 율법을 낭독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 있었던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예루살렘의 성전이 서 있는 시온 산 등, 정말 많은 산들의 이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벤하닷의 시대에 유다는 유다 산지에,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산지와 사마리아 산지, 그리고 길르앗 산지에 살고 있습니다. 아람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 신”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광야를 유랑하던 이스라엘이 살 던 시대, 가나안을 비롯한 지중해 동쪽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관(神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세계관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산의 신”이 아니라, “농경의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레반트 지역이라고 불리는 지중해 동쪽 지역에서 비를 내리게하는 천둥 번개의 신을 부르는 말이 ‘바알’입니다. 그리고 바알의 아내가 풍요의 여신 아세라예요. 하늘 위에서 바알이 천둥 번개와 함께 비를 내리면, 이 비를 머금은 아세라가 수태해서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맺는 거지요. 이 바알 신앙이 국가의 신앙으로 자리잡은 곳이 가나안 땅과 맞대고 있는 페니키아(성경의 두로와 시돈 지역)이고요. 강대국 페니키아의 영향을 받고 살던 가나안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바알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역시 유랑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 땅에 정착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야하는 새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형상도 모양도 알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칼과 번개를 들고 무언가를 내리치는 바알의 역동적인 모습, 가슴이 풍만하고 임신하여 배가 나와 있는 아세라의 모습이 눈에 보기에도 훨씬 더 세련되고, 더군다나 농사를 짓는 자기들의 격(格)에 맞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보기에 좋아보이는 가나안의 것들을 선택하던 시대가 사사들의 시대인 겁니다.

❖ 메소보다미아(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성경에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분들도 계실겁니다. 아시다시피, 4대 문명중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처음 문명이 메소포타미아입니다. “메소스” μέσος 라는 말은 “가운데”(in the middle of), 또는 “둘 사이”(between)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타모스” ποταμός 라는 말은 “강”이라는 뜻인데요. 우리말로 풀어 써보자면, “두 강 사이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메소포타미아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말이 그리스어 어근을 가지고 있기에 이 단어가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 이후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와 주변의 땅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름으로서의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의 일반적인 사용은 그러할 지라도, 이 땅을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로 부르는 것은 그 이전부터 였던 것같아요. 이 땅을 부르는 히브리식 표현이 사사기 3장 8절에 나오는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 땅을 “아람 나하라임” אֲרַם נַהֲרַיִם 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강을 끼고 있는 아람지역”이라는 뜻이지요.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람 나하라임의 “구산 리사다임”이 가나안 땅을 8년동안 지배했다고 말합니다. “구산 리사다임”이라는 왕의 이름을 좀더 히브리어스럽게 읽어보자면, “쿠샨 리쉬아타임” כּוּשַׁן רִשְׁעָתַיִם 이라고 읽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읽으면,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쿠샨 리쉬아타임 멜렉 아람 나하라임”이라고 읽게 되는데요. כּוּשַׁן רִשְׁעָתַיִם מֶלֶךְ אֲרַם נַהֲרַיִם 나하라임 아람 멜렉 리쉬아타임 쿠샨 마치 “멜렉”(왕)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아람 나하라임”과 서로 운율을 맞추려는 듯, 왕의 이름을 “구산 리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구산 리사다임”은 굳이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두 배로 악한 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를 연구하는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언어유희(Wordplay)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두 강 사이에 끼어있는 아람 땅의 두 배로 악한 구산”이라는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는 셈이 되는데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이 받는 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Why 옷니엘?

자기들의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가서는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신들을 예배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뒤늦은 부르짖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자를 세우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옷니엘을 “사사” (히. “쇼페트” שׁוֹפֵט)라고 부르지 않고, “구원자” (히. “모쉬아” מוֹשִׁיעַ)라고 불렀습니다. “사사”라는 이름은 누군가를 재판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입니다. 그러나, 사사는 재판관의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사들의 이야기는 주로 전쟁과 관련이 있지요. 위급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탈출시키는 “구원자” 또는 “전쟁의 지도자”의 역할 또한 사사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그럼,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왜 하필 옷니엘이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선택하셨는지 성경에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안다면 왜 옷니엘을 택했는지를 추측할수가 있어요.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인 그나스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갈렙의 사위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는데, 혹시, 느낌이 오시나요? 아직 느낌이 안 오시면, 옷니엘의 장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시면 압니다. 갈렙이죠. 그리고, 갈렙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당시의 트렌드라고 해야할까요? 그 당시 사람들은 지도자나 일반 백성들이나 한가지로 경제적인 윤택함과 그 땅에서의 안전보장 등 이런 저런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고 우상숭배를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옷니엘은 트렌드를 따르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옷니엘은 그 당시에 좀 속된 말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한 가닥하고, 좀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을 보면 알수 있지요. 가장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보면, 이런 사람이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자기 재산도 늘리고, 땅도 늘리고, 그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자기 이름의 가치도 올리는 것이 처세를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옷니엘은 그 이름 값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사회의 풍조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그 엇나간 길에서 힘과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할 지라도, 오직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옷니엘의 이름)라고 선언했던 이가 옷니엘이었습니다. 그래서 옷니엘을 소개하는 처음에, “옷니엘”이라는 이름에 대단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출애굽, 그리고 치열한 정복 전쟁의 시대였던 사사의 시대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방인들과 결혼하던 시대, 우상을 떠받치던 시대라고 3장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증언합니다. 이렇게 모두들 그 땅의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따를 때, 옷니엘 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옷니엘 주변의 사람들이 바알들과 아세라가 우리의 미래이며 힘이라고 떠받드던 때,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 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사람이 옷니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였고, 그래서 사사로 부름받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영”은 무작위로 선택된 아무개에게 복권 당첨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사람, 고백하는, 그리고 그 고백대로 사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옷니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장한 이름을 가지고, 이름 값을 하며 살던 이가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됐다라는 것은 절대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2] 첫번째 사사 옷니엘

02 첫번째 사사 옷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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