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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4] 세번째 사사 삼갈

BIBLIA 성경공부 시리즈 – 사사기 [4] 세번째 사사 삼갈

이 글은 2019년 봄 성서학연구소 BIBLIA가 미래목회연구소 느헤미야와 함께 진행한 “사사기-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동영상 강의는 갓피플TV에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정리는 강의를 읽기 쉽도록 정리하였고, 중간 중간 혹 정확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내용이 삽입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 강의를 하다가 실수한 부분은 교정을 하였습니다.

 

❖ 삼갈, 소(小)사사?

삼갈은 성경에 딱 한 절 나옵니다.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삿 3:31)

한 절 나와있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시작 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사기의 이야기를 설명할 때 그 순환구조 — 사람들이 죄를 짓고, 벌을 받고, 구원받고, 평안하고, 다시 죄를 짓고— 를 따라갈수가 없겠죠. 과거에 사사들을 구분을 할 때, 대(大)사사와 소(小)사사로 구분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사사기의 옷니엘의 이야기에서와 같이 사사의 일대기가 순환 구조에 잘 맞거나, 드보라나 기드온, 삼손처럼 사사가 했던 일들이 세부적으로 길게 기록되어 있는 사사들을 대사사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소사사라고 부릅니다.

    이 구준에 따르면, 삼갈은 사사 중에서도 소(小)사사로 분류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사사니, 소사사니 하는 분류도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사면 다같은 사사이지 큰 사사는 뭐고, 작은 사사는 뭐겠어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웠으면 모두가 다 똑같은 사사입니다. 누구는 더 위대하고, 누구는 덜하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큰 사사, 작은 사사의 개념에 괜히 울컥합니다. 그리고 크고 작음을 나누는 기준도 참 억지스럽습니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나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가 일반이고, 목사나 전도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일반이듯이 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학자들이 대사사(major judge)니, 소사사(minor judge)니 하는 표현을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삼갈, 비록 혈통으로는 이방인지만

‘삼갈’이라고하는 이름은 이스라엘식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삼갈의 이름을 근거로 삼갈이 후르족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갈이 이스라엘 민족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출애굽 당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출애굽 1세대 갈렙 역시 학자들은 그가 그나스족(The Kenizzite)이며, 이들이 신앙 공동체로서 유다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니까요.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단일 민족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강제 노역으로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쫓아 광야로 나와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공동체를 부르는 이름이 히브리인이고, 이들을 성경은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파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신앙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갈은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삼갈의 선조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후르 사람들의 신들을 섬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삼갈은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만을 유일한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삼갈을 부르셨습니다.

❖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이기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해양 민족이 블레셋입니다. 람세스 2세가 죽고난 다음, 가나안 땅은 일종의 진공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지요. 이 때 가나안 땅에 들어온 두 민족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로 대표되는 해양 민족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대략 10년에서 20년 정도 일찍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요. 이 두 민족이 기원전 12세기에 서로 가나안 땅의 더 비옥한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서로 싸웁니다. 그 전쟁의 이야기가 사사기에 기록된 것이지요.

    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삼갈이 사용한 무기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말마드’ מַלְמָד 라고 소개된 ‘막대기’입니다. 이 말마드는 Hapax Legomenon 입니다. 성경에는 딱 한번 사사기의 삼갈 이야기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소를 모는데 사용하는 농기구 이거나, 소를 보호하는데 사용하는 무기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길이는 어떻게 되는지, 모양은 어떤지에 대해서 까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삼갈이 이런 무기를 사용한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해양 민족이라고 말했는데요. 흔히들 블레셋의 모체가 되는 해양 민족을 오늘날의 그리스 지역에 거주하던 미케네 사람들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해양 민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신과 그 신을 상징하는 동물이 ‘소’였습니다. 해양 민족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던 미데아 (Acropolis of Midea)와 그들의 이주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키프로스(Cyprus)에는 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들과 흙으로 빚어 구운 조상(彫像)들이 어렵지 않게 발굴됩니다. 해양 민족 미케네 사람들의 삶에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미케네 문명이 도리스인들의 침입과 지진으로 멸망하면서 이들이 동쪽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레반트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며 가나안까지 들어오게 되지요. 이 해양 민족의 상징이 소이거나, 또는 그들이 소를 중요시 하였기에 아마 이들에게 소가 신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거예요. 그리스 신화에도 제우스가 자주 소로 그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그 소의 민족, 또는 소를 신으로 삼아 섬기는 민족을 ‘소 모는 막대기’로 무찔렀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소 모는 막대기와 청동/철의 싸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이긴 것을 다른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블레셋으로 대표되는 해양 민족들은 이미 청동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였고, 철기도 사용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삼갈이 블레셋과 싸우던 사사의 시대가 대략 후기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청동기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지배 층과 전쟁 무기부터 철기로 바뀌기 시작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지역을 점령하였던 도리스 사람들이 그리스 지역에 철기 문화를 전파하였고, 이들에 밀려서 미케네 사람들이 가나안까지 들어왔으니, 미케네 사람들도 철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성경에서는 삼상 13:19에서 말하길, “그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의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구절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사사 시대의 마지막 때인 사울의 시대 이미 블레셋 사람들은 철기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삼상 13:20-21을 보건데, 블레셋 사람들은 벌써 철기를 농사에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람들은 철기는 커녕 청동기도 귀하던 공동체였습니다. 굳이 표현하지만, 아주 낙후된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문명의 수준이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격차가 큰 두 공동체가 전쟁을 했습니다. 블레셋의 승리는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다릅니다. 소 모는 막대기는 아마 나무로 만들어 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농기구를 들고 이스라엘을 이끈 사사 삼갈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삼갈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신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말이지요. 아니 시간 순으로 말하자면, 거꾸로 이야기 해야겠네요. 블레셋 군사들 앞에 선 삼갈처럼,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말이지요.

❀후르족 사람들(Hurrays) 

‘삼갈’이라는 이름으로 보아서 삼갈의 혈통이 이스라엘, 또는 가나안 민족 중의 하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삼갈은 셈어족의 이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갈과 같은 어근과 발음을 가진 이름이 누지(Nuzi) 토판에서 발견되기에, 삼갈이 후르 사람(호리 사람)의 후손이라는 데에 학자들의 동의한다.

이 민족은 지중해 서쪽 지역, 오늘날의 아르메니아 주변에 근거지를 두고 대략 기원전 1550년을 전후로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이들이 남겨놓은 글자 유산이 풍부하지 않아, 이들의 언어를 온전히 해독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들의 역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리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나라의 기록에도 이들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2차 사료로 이들을 파악하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기원전 1550년 이후, 후르족 사람들의 지역이 확장되어서, 시리아 북부 지역과 아나톨리아 반도 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미타니 왕국은 후르족이 세운 국가로 널리 알려졌다. 후르 사람들과 가나안 땅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자료가 없지만, 후르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도 일부 거주한 것은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4세(1401-1391 BCE)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 알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호리 족속(창 14:6; 36:20,21,29,30; 신 2:12,22)이 바로 후르 사람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아마르나 서신에 의하면 이들의 신은 헵파(Hepa/Hepat)이다. 헵파를 주신으로 섬기는 후리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가나안의 신들도 받아들였으며, 바알의 아내로 여겨지던 아나트(Anath) 역시 그들의 문화 속에 흡수하였다. 그러므로 삼갈을 소개하면서, “아낫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가나안의 여신인 아낫(Anath)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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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세번째 사사 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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