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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프랏 (Ein Perat)

엔 프랏 (Ein Perat)

성경을 읽으면서 “상징”이라고 하면, 다들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상징을 이해할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분명한 메세지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면 위험하니, 모호하게 숨겨서 돌려 표현하는 것이 상징의 역할일거야.” 그러나 상징은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 그것을 시각적으로 분명히 표현하고자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상징을 보고 성경을 읽는 우리가 어렵게 여기는 이유는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당시의 이스라엘의 문화와 자연 환경이나, 지리, 그리고 시대적인 정황을 잘 몰라서 일 수도 있겠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상징을 가장 잘 사용한 사람들은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엔 프랏’ (Ein Perat)은 아나돗이라는 마을로부터 약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와디 켈트 (Wadi Qelt)라고 불리는 건천이 예루살렘 북쪽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데, 예수님 당시에 길로 사용되던 이 건천(와디 wadi)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세 개의 오아시스가 나옵니다. 그 중에서 예루살렘 가까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아시스가 엔 프랏입니다. 건천을 따라 흐르는 물 줄기가 여리고까지 흐르는데, 이 물줄기를 프랏 강 (Nahal Perat, ‘나할 프랏’)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할 프랏에 예레미야가 왔습니다. 아마 예레미야는 평소에도 자주 가던 샘이었을 겁니다. 나할 프랏에 예레미야가 왔을 때, 아나돗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예레미야는 수영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가라고 하셨거든요 (렘 13). 폐족(廢族)이라 할 수 있는 제사장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유다의 멸망을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폐족이었기에 예레미야의 말이 그리 큰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가문을 쫓아낸 사독 계열 제사장들에 대한 반감으로 악담을 퍼붓는다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귀가 있으나 들을 귀를 가지지 못한 유다 사람들에게 보다 분명한 메세지를 전달해 주고 싶으셨습니다. 귀가 아닌 눈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베로 만들어진 허리 띠를 사서 허리에 묶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라! 그리고 그 곳에서 바위 틈새에 그 베 허리띠를 감추라!”

그런데, ‘유프라테스 강’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가 ‘프랏’입니다. 철자법도 똑같아요. 어떤 성서 연구가는 정말로 예레미야가 유프라테스 강까지 갔다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예레미야가 한달 길을 걸어야할 유프라테스 강을 갔다가 돌아와서 또 며칠 만에 다시 그 강으로 갔다왔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프라테스는 유다 사람들과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적대국가의 땅이었습니다. 만약 예레미야가 정말 그곳 유프라테스 강으로 간다면, 눈에 뻔히 보이는 역적 행위로 보여졌겠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성서 연구가들은 예레미야가 간 곳이 나할 프랏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프라테스 강과 히브리어로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곳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가까운 아나돗 옆에 터져나오는 엔 프랏에서 시작하는 그 물줄기로 예레미야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산 베 허리 띠를 그 물기 축축한 바위 틈에 숨기게 하셨습니다. 뻔히 썩을 것을 아시면서 말입니다. 예레미야의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예언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제국을 이룬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될 예루살렘, 그리고 그 강을 건너 포로로 끌려가게 될 유다의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이런 예레미야의 상징 행동을 통한 메세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엔 프랏에서 수영을 하고, 물가에서 쉬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유다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상상해 본적도 없고,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몇 년전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여호와긴 왕과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소식들을 얼마전에 들었는데, 물정도 모르고 기이한 행동을 하는 예레미야를 보면서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근거렸을 수도 있었겠지요. 예전에 문학적인 감수성이 풍부하신 저의 장인 어른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딱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사람들을 향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자고 있는 사람은 흔들어 깨워 함께 가던, 밥을 먹던 할 수 있습니다만, 자는 척하는 사람을 아무리 흘들어 깨우던 일어날리 만무한 것과 같이, 예레미야의 말에 자는 척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분명한 미래의 운명에 일부러 눈 감았습니다. 이유가 뭐 있었겠습니까? 그냥 듣기에 거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운명은 오로지 정치적인 판단에 달려있는데, 그 정치적인 판단은 오히려 예레미야 보다는 왕궁의 사람들의 것이 더 옳다는 불신앙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백성에게 보여준 그 썩은 베 허리띠 처럼 유다는 멸망했고, 예루살렘 사람들이 자랑하던 하나님의 집은 무너졌습니다. 예레미야가 보여주었던 상징 행동이 모호해서가 아니라, 그 분명한 메세지를 들을 귀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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