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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 13년 1월] 삭개오야!

[기독교세계 13년 1월] 삭개오야!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국사 선생님이셨고, 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한가지 단점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몇몇 공부 잘 하는 아이들과 어머니회에 속한 아이들의 이름은 꼬박꼬박 불러 주었지만 말이지요. 게다가 아침 조회시간에 출석도 부르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이들 가운데에 상당수는 이름은 출석부에는 있지만, 일년 내내 한번도 불려본 적이 없는 글자였습니다. 그때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일년을 마치고 마지막 선생님과 인사를 하던 때에 뜬금없이 한 친구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이름을 아세요? 왜 선생님은 일년 내내 저를 ‘야’라고 부르셨나요? 우리반 아이들 중에서 이름을 외우시는 애들은 얼마나 되세요?

늘 제 이름은 불렸기 때문에 한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데, 그러고보니 정말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을 ‘야!’라고 불렀던 거지요. 선생님은 매우 난처해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잘 모른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동안 콧대 높았던 자존심이 산산조각이 난거지요.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도 제일 먼저 했던 것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 때 그 친구의 질문은 절대 잊혀지지 않아요.

 

신약성경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1만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가진 풍요로운 도시, 광야의 오아시스이면서 아름다운 요단강이 흐르는 종려나무 성읍에서 성공을 향해서 뒤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가던 삭개오입니다. 주일학교 때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삭개오의 모습은 뚱뚱하고 코는 벌렁 들려져 있고, 탐욕스럽게 생긴 키가 작은 땅딸보였습니다. 세금을 거두어 들인 삭개오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 이상의 것을 걷어들였는지, 걷어들였다면 얼마나 걷어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세금 징수원에 대해서는 아주 적대적이었습니다. 로마의 정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화 정책이었는데,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마을들을 도시화하는 토목사업에 로마가 공을 들인 가장 큰 이유는 도시화가 되야지 세금을 걷어들이기가 수월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꼬박꼬박 때되면 나타나서 세금을 걷어가는 삭개오를 볼 때마다 지긋지긋한 로마를 떠올렸을 겁니다. 그리고 로마라는 단어가 그대로 삭개오의 얼굴에 박혀 버려서, 비록 유대인이지만 나라를 팔아버린 유대인이자, 로마의 앞잡이로 여겼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토록 욕을 먹기는 했어도 삭개오의 생활은 윤택하고 부족함이 없었을 겁니다. 또 사람들이 욕한다손 치더라도 그 앞에서 대놓고 그러지는 못했을 거예요. 밉보여서 좋을 것은 없었을 테니 말이지요.

여리고에서 행세 꽤나하고 거들먹거리는 삭개오가 값어치 나가는 좋은 옷을 입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돌무화과 나무 συκομωραία 로 올라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그러보니, 교회학교에서는 뽕나무로 배웠는데, 보다 정확한 번역은 돌무화과 나무, 또는 무화과 나무입니다. 땅딸보 키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나무에 기어올라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그 삭개오를 보면서 깔깔거렸을 겁니다. 분명히 뒤에서 수근거렸을 거예요. “그렇게 잘난 척하고 거들먹거리더니만, 고작 예수라는 랍비를 보기 위해서 체면 구겨 가면서까지 나무에 올라가냐?” 도대체 왜 삭개오가 그렇게 기를 쓰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 누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더라는 허무함? 하도 사람들에게 욕을 들어서 이제 좀 잘 살아보겠다는 생의 전환점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냥 그 유명한 예수라는 랍비가 누군가하는 호기심? 성경에 나온 대로만 이야기하자면, 아쉬울 것 없는 삭개오가 왜 예수님을 만나려고 돌무화과 나무를 올라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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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예수님께서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내려다보는 삭개오를 쳐다보신 것이지요. 삭개오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을 겁니다. 게다가 그 유명한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이미 알고서“삭개오야!” 하고 부르신 거지요. 제가 중학교 때에 저희 어머니가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전화심방을 받았습니다. 당시 집사님이셨던 어머니는 담임목사님께서 집으로 전화하셨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는데, 저희 삼남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다들 공부 잘하냐는 물음에 너무 감격하셨습니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그리 튀지도 않는 우리 어머니같은 집사님의 아이들의 이름, 그리고 당시에는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으셨던 아버지의 이름까지 아시니 얼마나 놀랍고 감격하셨을까요! 지금도 두고두고 ‘우리 감독님이 말이야…’ 하면서 그 때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신 겁니다. 이름만 불렀나요? 그 집에가서 오늘 주무신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자기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고, 혹시 속인 것이 있다면, 네 갑절이나 되갚겠다고 예수님께 약속한 것이지요. 낙타가 바늘 귀구멍을 통과한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이름모를 유대인 관리는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돈을 포기하지 못했는데 (눅 18), 경건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항상 뒷담화의 소재였던 삭개오는 그 모든 것을 버렸던 것이지요. 아마 삭개오를 계속 삐딱한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은 “삭개오가 다 털어 먹었군!”하고 손가락질 해댔을 겁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들 말처럼 재산은 다 털어 먹었지만, 더 값진 구원을 얻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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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겐의 선생이기도한 초대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150-215 C.E.)‘스트로마타’ Στρώματα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예수님이 그 이름을 부름으로 그 인생이 뒤바뀐 삭개오의 다른 이름 ‘맛디아’라고 소개합니다. 이 맛디아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열두 명의 사도에 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행 1:21-26). 또 4세기에 기록된 ‘사도들의 법’ Constitutiones Apostolorum이라는 책에서는 열 두명의 사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삭개오가 가이사랴 Caesarea의 첫 주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세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서 삭개오는 그 후에 로마의 속주였던 갈리아 Gallia 지방 (지금의 프랑스)으로 선교를 위해 떠납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에 대한 로마 당국의 감시와 관리는 얼마나 엄격했을까요? 가이사랴에서의 주교직을 수행할 때에도 그랬을 것이고, 갈리아로 가는 선교의 여정과 갈리아에서의 선교활동 중에는 죽을 뻔한 고비들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들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삭개오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는 버팀목이 있었다면 “삭개오야”라고 그 이름을 부르셨던 예수님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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