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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쉬 코르착 (Janusz Korczak)

야노쉬 코르착 (Janusz Korczak)

600만명의 유대인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각지에서 나치(Nazi)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부는 고된 노역을 견디다 못해 죽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걸린 병때문에, 생체실험 대상자로, 그리고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죽어 나갔던지, 시체를 어찌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불도저로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고서는 시신들을 밀어넣고 흙으로 덮은 뒤, “대략 1,000명” “대략 500명”. 이런 식으로 묘지를 알리는 팻말을 세워둘 정도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금 세계 곳곳에는 이렇게 죽어간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들이 세워졌고, 이스라엘에도 마찬가지로 “야드 바쉠”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추모관을 스쳐지나가는 한국인 순례객과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어린이들을 위한 추모관(Children’s Memoria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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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 촛불이 켜져있는데, 그 방을 둘러싸고 있는 거울에 비친 촛불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빛납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을 헤치고서 묵직한 소리로 죽어간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나지막히 불러주는데, 그 소리 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합니다. 그렇게 그 방을 나서면 슬픈 표정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한아름 품어 안고 있는 한 남자의 청동 조형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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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폴란드인인 헨느리그 골드슈미트(Henryk Godlszmit)는 필명인 야누쉬 코르착(Janusz Korczak)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소아과 의사이자 동화작가이며, 아동 교육가인 야누쉬 코르착은 의사의 직업을 버리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유대인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설립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은 야누쉬 코르착의 고아원을 바르사뱌의 유대인 게토(Ghetto)로 강제 이주 시킬 계획을 하지요. 게토로 이미 강제 이주 당했던 야누쉬 코르착과 192명의 고아들은 1942년 악명 높은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Treblinka Extermination Camp)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참조. 아우슈비치 다음으로 많은 유대인 800,000명이 죽었던 수용소). 수용소로 가기 위해서 각 지역에서 강제로 끌려온 유대인들과 야누쉬 코르착, 그리고 아이들이 중간 집합소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시험대였을까요? 한 독일군 무장친위대(SS)가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미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동화 작가이자 교육자이며, 사회 사업가인 야누쉬 코르착을 알아본 그는 야누쉬 코르착만은 살려주고 싶었더랬습니다. 비록 독일군이지만, 그도 역시 야누쉬 코르착의 책을 읽고 자랐으니 말이지요. 그러나 야누쉬 코르착은 자기 살 길만을 찾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을 뿐 더러,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이들을 향한 교육자로서의 책임이자 그동안 살아왔던 자기 삶의 결과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며 야누쉬 코르착은 마치 아이들과 소풍을 가듯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로 깨끗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두 줄로 맞추어서 강제 소용소로 향하였다고 합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에게 두려움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군병놀이처럼 우스꽝 스럽게 걸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1942년 8월 7일. 야누쉬 코르착은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januszkorczak02홀로코스트 추모관에 있는 야누쉬 코르착의 청동 상을 보면서,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죽었던 그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삶을 내 삶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야누쉬 코르착은 아이들이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 곳(죽음의 수용소)을 함께 바라보며 아이들을 예수님의 마음처럼 품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아이들이 걸어 들어가야했던 그 수용소를 향해서 같이 걸어갔고, 함께 죽었습니다. 그는 죽었으나, 그를 기억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비록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할 그리스도 예수님은 아니었지만) 그의 삶은 그야 말로 예수님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들리는 캐롤 소리와 크리스마스 카드, 달콤한 초콜릿, 그리고 연인들과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낭만에 묻혀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이유는 잊기 쉽상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 들어가듯 아픔과 고통 속에서 아우성 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해는 나를 위해 죽으셨던 그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며, 그 어린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그들에게 우리의 시선을 두고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나도 함께 걷겠노라 다짐해 보는 성탄절이 되면 어떨까 합니다.

야누쉬 코르착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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