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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동굴

제롬의 동굴

베들레헴에 성지순례를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는 예수님의 탄생장소를 보기 위해서 길게 선 순례객들이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님 탄생교회 (Church of the Nativity)에서 “운이 없을라치면,” 약 2시간정도를 기다려야 예수님 탄생 장소를 볼 수 있다. 사실 맞는 말은 “운이 따라야” 예수님 탄생 장소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더 맞다. 그만큼 많은 순례객들이 베들레헴을 찾고있다.

 

 

탄생교회는 콘스탄틴 황제 시절에 예루살렘에 건축된 최초의 세개 교회 중의 하나이다. 12년에 걸친 공사 끝에 339년에 완공된 탄생교회는 페르시아 침공의 역사를 견뎌내고 현재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보기 위해서 그 긴 두시간의 행렬의 맨 뒤에 선다. 아쉽지만 한국 성지 순례객들은 베들레헴에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대부분 베들레헴이 들어간 날의 일정은 오전이 아니면 오후만 베들레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그 반나절 약 2-3시간 사이에 예수님 탄생교회 뿐 아니라, 목자들의 들판 교회식사까지 모두를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두시간정도 걸려서 기다려야 볼 수 있는 순례의 행렬의 맨 뒤에 서서 기다리기 보다는 “아, 여기가 그 교회고, 저 앞의 동굴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구나!”하고는 돌아서 버린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의 탄생교회에는 들어가 보았잖아.”라고 스스로 자족하면서. 그렇게 베들레헴을 다녀간 순례객들의 상당수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웅장한 예배당만 볼 뿐,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제단에 그려져 있는 동방박사들도 보지 못하고, 카톨릭 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제롬의 동굴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생략”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같다.

 

 

슬로베니아 태생의 제롬은 당시 교황이었던 다마수스1세 (재위. 366-384)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 인맥으로 제롬은 교황청에서 다마수스의 비서와 같은 궁무대신의 역할을 맡아 보았다. 다마수스가 임종하자 교황청에서 콘트라베가 열리고, 제롬은 당연히 자기가 차기 교황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유세비우스마르쿠스와 같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임종한 교황이 있었던가하면 친구 다마수스는 무려 18년을 교황으로 있었고 그 아래에서 제롬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교회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교황이 해야할 주요한 업무를 본인이 계획하거나 조언하였다. 제롬은 신학자역사가였고, 그 신앙적인 깊이도 깊다고 정평이 나있었던 설교가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게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를 모두 원어로 읽을 수 있었던 석학이었다. 제롬의 생각에 본인의 교황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나만큼 교황의 일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나만큼 온 서방교회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어디있겠나?

그러나 결과는 제롬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제롬은 교황선거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고, 상심한 제롬은 이듬해 로마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베들레헴 주변의 은둔자들의 공동체에 388년에 오게된다. 제롬의 마음은 이미 지쳐있었고, 자신을 지지한 듯 보였던 많은 추기경들과 감독들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와 실망으로 사로잡혀있었다. 비록 몸은 베들레헴에 있지만, 그의 머리와 생각은 아직도 교황선거를 하던 4년전의 로마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베들레헴에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아기들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는 것이다. 그 아기들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 아기들이 어떤 이유로 함께 묻히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그 유골들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죽었던 아기들의 유골”(마 2:16)이라고 믿었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매장방식은 가족묘의 형태인데, 아기들만 그렇게 따로 묻힐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확고했졌다. 그 소식을 들은 제롬이 아기들의 유골이 발굴된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유골을 보면서 회심하였다.

이 아기들은 태어나서 예수님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는 데에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어간 첫번째 순교자가 되었구나! 그런데, 나는 남들이 누려보지 못했던 존경과 지위를 누려 보았고, 교황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그 권력도 누려보았는데, 단지 내가 교황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 이곳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서 그 예수님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구나! 이 아기들만도 못한 사람이 바로 ‘나’구나!

제롬은 그곳에서 아기의 유골하나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동굴과 잇대어 있는 동굴에 자신의 집무실을 마련하고 자기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였다. 30년에 걸친 성서번역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제롬의 자기의 책상 위에 가져온 아기의 유골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마음이 헝클어지고 잡념에 사로집힐 때마다 그 유골을 보며 자신이 해야할 일과 부끄러움이 없는 순교자의 삶을 꿈꾸었다. 당대의 세계 공용어인 라틴어로 성서를 번역하여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제롬의 신앙적인 결단으로 오늘날 우리의 손에 라틴어 번역 성경인 벌게이트 (Vulgate) 역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집무실이 있던 동굴에서 제롬은 영원히 잠들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예수님을 위한 순교가 공존하는 동굴, 그리고 그 태어나심과 순교의 열매가 함께 있는 동굴이 바로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교회 아래에 있는 동굴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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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Has 5 Comments
  1. 늘 좋은 글 올려줌에 감사하며, 교정이라도 보는 마음으로 사족 하나!
    콘트라베 – 콘클라베(concl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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