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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

갈멜산

고대 사회에서 이웃 나라의 왕을 섬길 때, “내가 당신을 섬기는 신하 나라, 신하인 백성입니다.”라는 표현의 방법은 섬기려는 나라의 신을 위한 신전을 자기 땅에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신전에는 자기들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무개 신과 더불어 주군(主君)으로 섬기는 이웃 나라의 신이 나란히 있거나, 주군 나라의 신이 자기 나라의 신보다 더 뛰어난 신으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신전을 짓지 않는다손 치면, 자기 나라의 신전에 주군 나라의 신상을 세우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아합이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였습니다. 이세벨을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기 보다는, 이 결혼은 정략적인 결혼의 성격이었습니다. 시돈은 도시 국가 연합인 페니키아 왕국의 도시 중의 하나로 해상 무역과 뛰어난 해상 군사력으로 지중해 세계를 호령하였습니다. 지중해변 동쪽 끝의 도시국가 연합체인 페니키아가 오늘날의 스페인까지 이르는 거대한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휘어 잡았으니, 페니키아의 남쪽에 위치한 이스라엘 왕국에 끼쳤을 경제, 군사적 영향력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아합의 입장에서는 페니키아의 공주와 정략적인 결혼으로 자기의 안전을 보장받고, 페니키아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혼한 아내가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홀로 오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공주가 홀홀단신으로 시집올 리는 만무하지요. 이세벨은 시돈에서 자기를 섬기던 신하들과 종들을 대동하고, 거기에 신하된 나라 이스라엘에 당당하게 주인된 나라의 신 바알을 따르는 신관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이세벨의 아버지가 “엣바알”인데, 그 이름의 뜻은 “그와 함께 하는 이는 바알이다.”라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 아니라, “임마누바알” (바알이 우리와 함께 있다.)인 셈이지요. 아합은 페니키아의 신, 바알을 위해서 사마리아에 신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전에 바알 뿐 아니라, 바알의 아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던 아세라 신상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상은 바알을 따르는 페니키아의 신민(臣民)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 만이 유일한 왕”이라고 고백하며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과 실존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은 성전에서 예배 드릴 때, 다른 사람들에게 거룩한 장소에서 보여주는 형식이고, 실존은 성전 밖에서 경쟁하며 살아야하는 세상에서 쟁취할 수만 있다면, 불의와 부정을 판단하는 신앙의 양심은 잠시 저 깊숙히 숨겨 두는 곳이었습니다. 당장에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지 않는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지만, 페니키아를 섬기지 않으면 경제, 군사적인 위협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닌, 페니키아를 왕으로 선택한 것이지요.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신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그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분이라고 부정하는 것도 아닌데, 바알을 함께 섬긴들 문제가 있을까? 그냥 숫가락 하나 더 얹은 것 뿐인데 말이야.

믿음과 삶이 함께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지금 처한 상황에서 당장에 살아남기 위해서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선택적으로 버렸던 이스라엘은 결국 “가뭄”이라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벌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바알은 천둥 번개의 신입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인 거지요. 그런데, 가뭄이라니요? 지금 그를 위해서 사마리아에는 신전을 지어 놓고, 그를 섬기는 신관들이 끊이지 않는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삼년의 가뭄 끝에, 엘리야가 하나님께 신실한 오바댜를 통해서 아합과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불렀습니다. 그러고서는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합니다. 정말 바알이 신이라면, 그것도 천둥 번개의 신이라면, 번개를 쳐서 불을 내려보라는 것이지요. 천둥 번개와 함께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당연히 못하겠지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다 우리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이니 말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대로,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 몸에 칼과 창으로 상처를 내며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기도해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왕상 18:38이하), 오직 우리 여호와 하나님 만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셔서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지중해에서 구름이 밀려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산, 갈멜산에 올라서면, 항상 하나님께서 제게 물어보시는 듯합니다. 저의 신앙은 삶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삶 속에서 신앙과 부딛히는 그럴싸한 번영의 미끼가 내 앞에 던져졌을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삶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변함없는 주인이요, 왕은 누구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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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Has 2 Comments
  1. 귀한 자료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사진에 다볼산이 두개로 나왔습니다. 헐몬산을 말씀하실려고 한것인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 앗.. 제 실수이군요. 감사합니다.
      다볼산이라고 쓰여있는 두개중에서 오른쪽의 것, 그러니까 모레산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는 곳이 “수넴”입니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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