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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 13년 4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함께(同) 일하는(役) 사람들

[기독교세계 13년 4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함께(同) 일하는(役) 사람들

유대인에 대해서 묻는 흔한 질문 중에 하나는 “누가 유대인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유대인으로 받아들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면 유대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평면적인 정보에 익숙해서 “만약 한국 남자와 유대인 여자가 결혼하면 유대인입니까? 아니면 한국인입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물론 유대인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구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이 “어머니”인 것은 맞습니다. 현대 유대교에서는 유대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매우 관대하게 받아들이고있고, 아버지의 인종이 어떠하던 간에 어머니가 유대인이기만 하면 그 자녀들을 유대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러나, 이런 유대인의 민족적인 구분은 훨씬 후대에 생겨난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라는 말은 있어도 ‘사라의 아들 이삭’이라는 표현이 이삭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된 적은 없거든요. 유대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자들은 모계중심의 구분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생겨나지 않았는가하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모계중심의 민족적인 구분에 대한 증거들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후대의 유대 문헌들에도 유대인과 비유대인들 간의 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사생아(ממזר 맘제르)라고 경멸하며 부르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유대 공동체에서 합법적인 결혼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계 혈통에 의한 유대인의 민족적인 구분은 헤롯이 건설한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서 파괴된 이후, 본격적인 디아스포라 시대가 열리면서 점차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같아요.

부계에서 모계의 혈통으로 바뀌어진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를 아는 것도 흥미롭지만, 한편으로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는 엄격한 계층 구별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계층 구별은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우월성을 드러내는데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미쉬나 키두신(M.kidd 4:1)에서는 유대인들의 계층을 구별해 놓고, 그 계층 안에서 결혼을 할 수 있는 그룹들을 따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IsraelCaste

유대인의 계층의 맨 위는 제사장이 있고, 그 아래로 레위인들과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 부정한 일로 인해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는 제사장 계층, 개종자들, 자유한 노예들, 사생아들, 기브온 사람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고아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알지 못하는 고아들입니다. 유대인의 공동체 안에 열가지의 계층들이 있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유대인으로서의 대우를 동등하게 받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만 보더라도 제사장, 레위인,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간에 통혼을 할 수 있지만 비록 유대인들의 공동체 안에 함께 거주하고 있으나,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결혼하게 되면, 그 자녀들은 사생아의 취급을 받습니다. 다른 그룹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 공동체안에서 살고 있지만 유대인 공동체의 계층 부분 안에 조차도 들지도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 중의 하나는 “노예”들입니다. 이방인 노예가 유대인에게 팔릴 때에 여자 노예는 정결례를 통해서 유대교로 개종시키고 남자 노예는 할례를 시켜서 유대교로 개종시키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팔려온 노예들이 민족적으로 유대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예는 그저 재산일 뿐입니다. 노예는 어떤 한 재산도 소유할 수 없었고, 노예들의 노동의 소득은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노예에게 속한 것은 전부 주인의 것이었어요. 심지어는 노예의 자녀들까지도 말이지요. 노예를 소유한 주인들은 노예를 선물로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 수 있었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상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재산에 불과한 노예들이 주인들로부터 가혹한 체벌과 학대를 받은 들, 아무도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없었지요. 이스라엘 땅의 대부분의 노예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상) 두로아라비아에 있었던 노예시장을 거쳐 들어왔습니다. 3BCE 팔레스타인 땅에서 노예가 매매 되었다는 파피루스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노예에 대한 성서 이외의 기록이고, 제2차 성전시대의 유다 문헌에서도 노예들을 세워놓고 가격을 매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Sifra 25:42). 이런 노예들이 꿈꾸는 최고의 목표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유인이 된들,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유대인들과 같은 동등한 처우를 받지는 못할 지라도 물건들처럼 이리저리 던져지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도망갔다 잡힌 노예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는 유대문헌에서 찾을 수 없지만, 일반적인 노예의 상황이 그럴진대, 도망갔다 잡혀온 노예가 온전할 리는 없을 것같아요. 그런데, 성경에서 도망쳐 나온 노예 오네시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많은 노예들은 가계 채무를 갚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도둑질을 하다가 잡힌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빌레몬이 얼마나 부요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예를 소유할 만큼은 되었던 모양입니다. 빌레몬의 노예 중의 하나인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빌레몬서에 흐르는 빌레몬의 인품으로 보아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너무 가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오네시모가 도망쳤다기 보다는 노예들에게 매우 관대하고 다른 주인들처럼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네시모가 도망쳐 나올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바울이 처음부터 자기를 찾아온 오네시모가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종이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네시모가 누구인가를 알고서 바울도 꽤 충격을 받았을 것같아요. 자기에게 심장같은 사람이었던 오네시모가 알고보니 자기와 가까운 빌레몬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노예였으니 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바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오네시모에 대한 처우를 맡기는 편지를 오네시모의 손에 들려서 빌레몬에게 보냈으니 말입니다. 용서해야할 사람과 용서 받을 사람이 직접 만나게 한 바울의 의도는 하나님의 사역에도 지켜야할 순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바울에게 꼭 필요한 오네시모였지만, 빌레몬에게는 여전히 도망쳐 나온 종이었을 뿐이지요. 노예제도는 고대사회에서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제도였고 모든 나라가 이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마의 영향 아래에서는 자유한 시민보다 노예의 수가 더 많기도 했을 정도이지요. 바울은 이와 같은 이방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서 처음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주인과 소유물이었던 자유인과 노예의 관계를 동역자의 관계로 바꾸기 원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의도를 받아들였고 (제가 상상기로는) 흔쾌히 바울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자신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렇게 받아들여진 사람이었을 테니까 말이지요. 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만들어낸 빌레몬은 후일 가자 Gaza의 주교가 되었고, 네로의 박해 때에 순교를 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디모데의 뒤를 이어서 에베소의 주교가 되었다가 도미티안과 트라얀 황제때에 박해를 받고 순교하였고요. 빌레몬은 노예를 소유했던 주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예)이 되었고,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서까지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가 된거지요. 하나님 하시는 일은 한 치를 내다볼 수 없는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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