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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Elohist) 에 대한 간략한 정리들 – Gnuse

E (Elohist) 에 대한 정리들

Gnuse, Robert K. “Redefining the Elohist.” Jouranl of Biblical Literature 119[2] (2000): 201-220.

1. 학자들은 E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평가하는가? 

Van Seter문서들의 편집되어진 순서를 DJP로 보고있다. 그리고 J와 P는 모두가 포로기 시대의 것이며, E는 J에 포함되어진다고 주장한다.

Joseph BlenkinsoppDPJ의 순서로 문서의 발전 단계를 가정하고 있으며, E는 J또는 D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Erhard BlumE는 신명기적 신학을 가지고 편집된 작품들의 일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992년까지 Van Seter는 DJP의 포맷을 가지고 있다가 이제 DPJ로 그 포맷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J를 오경의 최종편집자로 보고있다.

2. E자료의 기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

Gnuse, Robert K. “Redefining the Elohist.” Jouranl of Biblical Literature 119[2] (2000): 201-220.

AndersonBernard Anderson은 J와 P는 남쪽 왕국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D와 E는 북쪽 왕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고전적인 JEDP의 기원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이다.

Volz, RudolphAnderson의 견해에 대해서 Paul Volz와 Wilhelm Rudolph는 반대한다 (Paul Volz and Wilhelm Rudolph, Der Elohist als Erzählerü (BZAW 63; Giessen: Töpelmann, 1933); Wilhelm Rudolph, Elohist von Exodus bis Josua (BZAW 68; Giessen: Töpelmann, 1938)). Volz와 Rudoph는 E는 J 자료의 보충자료이며, 이 자료의 기원은 고전적인 비평가들이 말하는 북쪽이 아니라, 남쪽의 자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E 자료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자료가 아니며, J 자료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WolffE가 독립적인 자료가 아니라는 것은 Hans Walter Wolff 역시 마차가지로 인정한다. 물론, Wolff는 Volz와 같이 이것이 J의 보충자료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E자료들이 서로 연관성이 없이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며, E 자료 (E Source)라고 학자들이 부르는 것을 Elohistic Fragments (E 단편들)라고 부른다. 이러한 Wolff의 견해는 Martin Noth의 견해를 이어 받은 것이다.

JenksAlan Jenks는 E는 단일저자가 아니라,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는 학파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E는 기원전 10세기 후반이나, 9세기 초반에 북왕국에서 전통으로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위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E의 중심 주제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 전통과 연관이 있으며, 이 예언자적인 시각이 E에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JarosKarl Jaros는 E는 기원전 9세기 후반이나, 8세기 초반에 기록되었으며, 이 때는 엘리야와 엘리사보다는 후대이고, 호세아보다는 이전시대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가나안 종교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CooteRobert Coote는 Wolff와 Jenk의 견해를 서로 짬뽕한 것인데, E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 (ca 920 BCE) 때에 J의 보충자료로 기록된 것이며, 그 이유는 솔로몬 시대에 만들어진 법들에 대해서 반대하기 위해서 이며, 여로보암 1세의 치세에 만들어진 E에는 왕위 계승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이야기를 포함한 이유는 앞으로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에 대한 여로보암 자신의 걱정때문이다고 설명한다.

3. E의 역사와 특징 

E의 역사 사마리아가 멸망할 당시(722BCE)나, 앗시리아의 지배 아래에서 사마리아가 처해있을 당시에 E가 발전하였다. 국가의 정체성을 상실한 북이스라엘 왕국의 생존자들은 이제 정치적인 것보다는 종교적인 정체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E자료는 D자료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만한 구석이 많이 있다. 예를 하나들자면, D가 왜 586BCE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심판과 경고의 메세지를 주는 것처럼, E도 역시 왜 722BCE에 사마리아가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남쪽 유다왕국의 신명기 신학자들은 요시아 왕 시대 이후에 아마도 E의 언어와 신학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징(1) E는 “꿈”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고 중요한 매개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D와 예레미야는 꿈을 통한 계시를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신학자들은 E전통이 D전통보다 더 오래된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꿈”에 대한 E의 태도가 D와다른 가장 큰 이유는 D와 역사적인 정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D (남쪽 유다왕국)의 경우에는 이미 성전을 가지고 있었다. 성전은 예배가 이루어 지는 곳이고,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지, 꿈을 통해서 예언을 받는 곳이 아니었다. 결국 “꿈을 통한 계시”는 남쪽의 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E의 경우에는 성전이 없었다. 대신에 베델을 위시한 여러 장소에 성소가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소에서 꿈을 통해 계시는 받는 것은 D에 비해서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특징(2) 성소 E는 단과 베델에 세워진 황금송아지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론의 황금송아지 사건(32:1-29)과 여로보암이 세운 송아지들을 비판하는 북왕국의 예언자들의 이야기(왕상 12:26-32)들은 그 좋은 예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E는 베델의 성소를 야곱관 연관시켜 매우 긍정적으로 바로보는 이중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두가지 서로 다른 신학적인 신학적인 가치평가는 722년 사마리아의 멸망이후에 만들어졌다. 베델의 성소가 오염되고, 사마리아가 결국 멸망하게 된 것이 바로 송아지 의식때문이었다는 것이다. E에게 있어서, 성소(Shrine)은 성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록 송아지 의식으로 더럽혀졌지만, 남쪽에 성전이 있다면, 북쪽에는 베델의 성소가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E의 신학사상과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호세아였다. 호세아는 이와같은 송아지 의식에 대해서 반대하던 예언자였다. 요시아에 의해서 베델의 성소가 없어진 다음, E전통과 북쪽 예언자의 예언들이 남쪽으로 전해졌고, 아마도 이러한 전통이 신명기적 신학에 근거한 역사와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에스겔 8-11장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장들에세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는 의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586BCE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4. E와 선지자 호세아

ProckschOtto Procksch는 호세아가 E의 전통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JenksOtto Procksch와는 반대로 Jenks는 호세아와 E의 연결고리는 매우 소수에 불과하고 J와 E와 같은 특정 전통에 호세아가 영향을 받거나 의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구전전통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GnuseGnuse는 Jenks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호세아가 E의 전통을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E의 전통에 있는, (1) 야곱의 출생, (2) 아람땅으로 도피, (3) 베델에서 천사를 본 사건, (4) 라반의 집에서 일한 것, (5) 브누엘에서의 대립 이야기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Gnuse는 Jenks가 말한 것처럼, E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하나, J나 E의 전통이라는 것을 말할 만한 요소들이 호세아의 신탁에서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으로만 언급되어있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E의 것과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세를 예언자로 말한 부분 (12:14), 황금 송아지 의식을 저주한 것, 그리고 왕정과 같은 독재적인 지배체제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가진 것 밖에 없다고 말한다.

5. 일반적인 특징

카리스마있는 영웅들E는 카리스마있는 영웅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영웅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읶는 지도자인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시키는 사람으로 “예언자”들이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 좋은 예들이다.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꿈을 통해서 직접 말하고 있다.

모세 하나님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듯이 모세와 이야기를 한다.

호렙산하나님은 산에서 현현하신다 (모세와 호렙산의 엘리야)

예언자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신다.

5. E전통의 모세와 사무엘 이야기 비교

(1) 모세를 부르는 장면과 사무엘을 부르는 장면의 유사성이 있다. 특별히 언어학적인 특징인데, 출 3:4와 삼상 3:4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이 모세와 사무엘을 불렀을 때에, 둘은 모두가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2) 둘 모두가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불렀다.

(3) 이방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4) 둘은 모두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의 예언자적인 중재인으로 그려진다.

(5) 전쟁의 지도자이며, 재판관이다.

6. E전통의 모세와 엘리야-엘리사 이야기 비교

(1) 엘리야는 빵과 고기를 아침과 저녁으로 받았다 (왕상 17:6). 광야에서 모세와 출애굽한 백성은 아침에는 빵(만나)을, 그리고 저녁에는 고기(메추라기)를 받았다 (출 16:8,12)

(2)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 싸웠다 (왕상 18:20-40). 모세는 이집트에서 마법사들과 싸웠다 (출 7:8-13, 20-22)

(3) 엘리야는 호렙산으로 갔다 (왕상 19:1-8 ). 모세는 시내산으로 갔다 (출 3:1- 4:17)

(4)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주권을 넘겨주었다 (황상 19:16-21; 왕하 2:1-25).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었다 (신 31:14; 34:9)

(5) 엘리야와 모세 모두가 죽었고, 요단 동편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디엔가에서 묻혔다 (왕상 2:1-12; 신 34:1-8 )

(6) 엘리야와 모세 모두가 물을 갈랐다 (왕상 2:8; 출 14:16)

(7) 엘리와와 모세 모두가 대부분의 생애를 요단 동편에서 보냈고 (출 2:15; 왕상 17:2-6), 이방인으로 치부되는 가족들과 살았으며 (출 2:16-22; 왕상 17:8-24), 이방신들과 대적하기 위해서 돌아왔고 (출 7:8-11:10; 왕상 17:8-24), 성룩한 산으로 갔고, 약속의 땅으로 여행을 하게된다.

(8) 엘리사와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갈랐고, 가나안 서편으로 왔으며, 그들의 권위와 지도력은 자기 앞의 엘리야와 모세로부터 받은 것이다 (왕하 2:14; 수3:1-17)

(9) 두 이야기 모두가 왕보다 예언자가 우위에 있었다.

(10) 두 이야기 모두가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다. 엘리사는 백성을 이끌고 모압 족속과 전쟁을 하였고 (왕하 3:9-27), 바알신봉자들과도 전쟁을 한다 (왕하 9:7-13). 이것은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아말렉 사람들과 전쟁을 하는 것 (출 17:8-6)과 비교될 수 있다.

 

[Gnuse] Refinding the Elohist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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