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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광야에서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었는데) 때, 방학숙제로 해야만(!)했던 그림일기였다. 숙제로 어쩔 수 없이 써야했던 일기를 제외하고, 내 마음에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한 때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중학교 때부터였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와 함께 독서실을 다녔는데, 독서실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일기쓰기였다. 그 일기장은 열쇠가 채워진 내 책장 속에 있기 때문에 엄마에게 들킬 염려도 없었다.

그 일기장에 내 인생의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내가 몇년도에 고등학교에 가고, 몇년도에 대학교에 가고, 몇년도에 대학원에 가고, 몇년도에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인생 계획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인생 계획표가 32살까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박사과정 공부는 내 인생의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 인생의 계획표 대로라면 이미 박사를 끝내고 뭔가 한자리하고 있어야하는데, 그 기간동안 영월에서 목회를 했고, 목회를 하면서 엄지 손가락도 잘렸고, 뜻하지 않는 병도 얻었고, 아름답고 슬픈고 목이 메이고 가슴이 먹먹한 기나긴 고백의 이야기들을 마음에 품고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지금 다시 이스라엘에 와서 박사과정을 앞두고 있다. 

모세의 그 기구한 인생을 보면서, “그래 네 인생도 꼬일대로 꼬였었구나!”라며 동지의식을 느낀다. 이집트의 왕자로 파라오의 꿈을 꿀 수는 없었겠지만, 얼마나 장대한 포부를 그의 가슴에 품고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은 미디안 땅의 광야에서 십보라와 결혼해서 목동 노릇이나 하고 있는 모세를 보니, 유대광야의 한 켠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내 처지와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모세와 내가 같은 점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모세나 나나 하나님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이 제일 처음 떠오른다. 모세는 하나님을 몰랐다. 하나님을 몰라보고는 감히 그가 누구냐고 묻는 어이없는 신앙(?), 아니 신앙 조차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지만, 호렙산의 그때 이전에 단 한번도 하나님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 않나! 나처럼! 호렙산 이전의 모세의 삶을 보면, 도무지 하나님께서 모세를 왜 선택하셨는지 알 수 없다. 이미 사람들은 출애굽기를 읽어서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다들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알기 전의 모세만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최대 실수는 그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모세를 선택한 것일 게다. 그것도 나처럼!

그럼에도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드라마 같은 인생살이에 불쑥 찾아오셔서 처음 계획했던 그 계획대로 그를 부르셔고, 만나셨고, 사용하셨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인생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적이 무엇있을까! “꼬일대로 꼬인 인생”동지의식을 가진 나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기회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양과 염소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 푸른 초장을 따라 자기 의지대로 갔지만, 모세가 이른 산이 하나님의 산, 호렙이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과 모양으로 이 광야에서 나를 만나 주실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유대광야의 밤 바람 냄새를 맡으며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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