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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초막절 알기

평신도를 위한 초막절 알기

* 초막절(장막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물어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긴 이야기를 페북에서 나눌 수 없어서 평신도들을 위한 이야기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막절 (초막절)

초막절(수콧 סכות)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온 곳은 레 23:33이하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으로 지키라고 하신 절기들 중의 하나입니다.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초막절의 가장 큰 의미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여름 농사를 거둔 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40절). 이스라엘은 두개의 큰 절기로 기후가 변화합니다. 유월절(약 3-4월)부터 장막절 (약 9-10월)사이는 건기입니다. 정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여름입니다. 그리고 장막절부터 유월절 사이는 우기입니다. 보통은 11월부터 북쪽에서 비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이런 기후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두 종류의 농사를 합니다. 우기에는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밀과 보리와 같은 밭농사를 하고, 건기에는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과실농사를 하지요. 건기에서 우기로 가는 절기가 장막절이고, 우기에서 건기로 가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지금은 장막절만 설명하기 때문에 다른 절기에 대해서는 설명을 다음 기회로 미루어 놓겠습니다. 초막절이 되면, 과실들, 그러니까 올리브, 무화과, 석류등 많은 열매들을 수확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게 풍성한 열매 주심을 감사하는 절기가 장막절입니다. 장막절은 칠일동안 지키지만, 여덟번째날에 안식하라고 성경에서 했기 때문에 총 8일을 초막절로 시키게 되는 셈입니다.

초막절의 두번째 의미는 43절에 나온 것같이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장막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수콧 סוכות 은 “임시로 사용되는 거주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에 40년동안 과양에서 지낼 때에 “장막”에서 거주하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막절은 역사적으로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을 돌아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레 23:42). 장막은 한 자리에 눌러 살기 위해서 짓는 집이 아니라, 언제라도 하나님의 명령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따라서 움직여야하는 임시 거처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 그리고 광야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또 그 척박한 땅에서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스라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보호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절대 신뢰를 다시금 확인하는 날로 장막절은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장막을 만들 때에는 사각형으로 만들게 된다면, 적어도 삼면이 벽이 있어야하고, 삼각형으로 만들어야한다면 적어도 두면이 벽이 있어야합니다. 장막의 벽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요즈음 편리한 조립식 장막은 프레임은 철재로 그리고 벽은 천으로 되어 있고, 보수적인 종교인들은 주로 나무와 합판으로 장막을 만듭니다. 중요한것은 설치도, 그리고 해체도 쉬워야한다는 것이지 그 재료 자체에 대한 제한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서 자라는 어떤 나무라도 괜찮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 보수적인 종교인들은 이 천장을 주로 종려나무로 사용합니다만, 요즈음에는 중국산 대나무 돗자리 처럼 둘둘 말리는 것을 많이 이용합니다.

초막을 만들 때에는 또 다른 규칙은 얼기설기 엮은 천정 너머로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과 별이 보여야한다는 겁니다. 요즈음 랍비들은 이 초막절에 아침과 저녁식사는 반드시 초막에서 하도록 하였습니다. 원래는 초막에서 자야하는 것이 성경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지만, 생활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랍비들이 율법을 해석하고 재해석해주는데요, 그래서 결정한 것이 잠은 집에 들어가서 잘 지언정 아침과 저녁 식사 만큼은 초막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면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ברוך אתה יהיה אלוהינו, מלך העולם, אשר קדשני במצותיו וצונו לשב מסוכה.

바룩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누, 멜렉 하올람, 아쉐르 키드샤누 베미쯔보타브 메찌바누 레쉐브 바수카

찬양받으실 여호와 우리의 하나님, 영원하신 왕, 그의 율법과 명령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이 장막에 계시는 분.

장막절이라고 해서 푸림이나 유월절 처럼 특별한 재료로 만드는 특별한 먹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막절은 모두가 기쁨을 누려야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혹 지나가는 사람이 장막에서 함께 음식을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 사람을 자신들의 식탁으로 환영합니다.

사람들이 장막에서 식사를 하는 시간대인 아침에는 아직까지 여전히 따가운 햇볓도 있고, 저녁에 초막에 나가서 저녁식사하면 얼기설기 엮인 초막 천정 위로 하늘의 달도 보이고, 별도 보이고, 덤으로 빛을 보고 달려드는 모기들이 엄청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때에 비가 한방울이라도 꼭 떨어지게 되는데요. 그러면 아이들이 다들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자고 조르겠지요. 그러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왜 이 고생스러움을 감당해 가면서 초막에서 식사를 해야하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출애굽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유대인의 교육방법입니다. 먼저 질문하게 하라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장막절이 되면, 보수적인 유대인들은 뭔가 손에 기다란 것들을 들고 다니는데요, 이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네 가지의 나무들입니다. 레위기 23:40에서는 이 네 나무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그런데, 종려나무, 버드나무는 확실한데, 아름다운 나무 실과, 무성한 나무 가지라는 말은 정확하게 어떤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지 불분명한데요, 탈무드에서는 이 나무들을 각각 시트론(귤과에 속하는 나무)과 도금양이라고 말합니다.

평신도들에게 설명해줄 장막절 이야기는 이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장막절과 전도서에 관해서 궁금하시다면, “장막절: 사람이 해야할 의무” (https://biblia.co.il/?p=301)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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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Has One Comment
  1.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역사와 전통입니다.(잘 아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쓴 예화인 아버지,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모습이
    흐뭇하게 해줍니다.
    전통과 역사가 없는 현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전통과 역사가 주는 의미를
    잃어버린 현재도 슬픔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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