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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서신]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해라. 그러면 점점 더 무식해 질 것이다.

[이스라엘서신]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해라. 그러면 점점 더 무식해 질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올해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아무개야!”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꼬박 꼬박 목사님, 목사님하고 불러야하니, 배가 아프네요. 이제 친구들은 다들 한 교회의 “영의 아버지”로 교인들을 섬기며, 살피는 사역을 감당할 겁니다. 정말 부럽고, 존경스러운 친구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친구들은 벌써 목사안수도 받고 자기 자리에서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데, 저는 아직도 공부하는 학생인 것이 불안하기도 하네요. 우스갯소리로, 저는 여기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박사과정을 마친 뒤에도 한국에 가서 다시 신대원에서 석사과정을 해야 하는데, 공부 마치고 나서 목사안수를 준비할 즈음이면, 제 친구들이 저를 심사하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비아돌로로사”의 편지 이후로, 이제 형에게 보내는 편지도, 아내에게 검열을 당하고 있습니다. 형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편지이고, 목회자들 뿐 아니라, 평신도들도 보는 그야말로 공개된 편지에 그렇게 철모르고 쓴다고 핀잔을 들었어요. 어제는 성지순례를 오신 친구의 아버님이신 목사님을 뵈었는데, 저를 보시더니만 껄껄 웃으시면서, 기독교세계의 글을 보고 있노라고 하시면서 역시 “아직 젊긴 젊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만…. 하고 싶으신 말씀을 아주 정제하고 정제해서 제게 해주신 말씀이 아닌가합니다. 아버님 목사님이야, 저와 같은 아들을 두고 계시니, 아들 생각이 나기도 하고, 사위 생각이 나기도 하고 하니 그렇게 받아주실 수 있으시지만, 정말 저를 모르는 다른 목사님들은 매우 불쾌하셨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매일 제 아내에게서 핀잔을 들을 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목사님께서도 같은 생각이시니…. 그러고 보면, 형과 제 편지를 싣는 기독교세계 편집 맡은 분도 제 편지를 받을 때마다 조마조마할 겁니다. 성지순례 안내를 하다보면, 남자와 여자 교인들의 질문이 참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남자 교인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남자 교인들이나 여자 교인들이나, 모두 가장 첫 번째의 관심은 성서이겠지만, 하여간에 그것을 제외하고 남자 교인들은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치와 경제에 관한 질문들에 대답을 하다 보면, 여자 교인들은 버스 안에서 대부분 졸고 있습니다. 졸릴 만하지요. “이스라엘 인구가 6백 50만 정도 되고요.” (2014년 현재 7백80만) 까지는 여자 교인들도 들어 줄 수 있습니다만, “GNP는 이미 낡은 개념이고, 요즈음 경제력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수가 PPP라는 ‘구매력 지수’라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나라는 2005년 기준으로 이만 사백 달러이고, 이스라엘은 이만이천삼백 달러입니다.” (2014년 현재 3만 6천 달러) 정도 되면, 여자 교인들은 다들 고개를 창밖으로 돌립니다. 12_Trees_02_pdf 형, 그러면 여자 교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뭘 것 같아요? 꽃과 나무입니다. 이거 매우 난감한 거지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나,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정말 자신감 있습니다. 그런데 꽃과 나무들은 정말 힘들어요. 제가 두 번째로 성지순례 안내를 할 때였습니다. 우기일 때에 처음으로 안내를 하고나서, 얼마 안 있어서 곧바로 두 번째 안내를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때에 발생했습니다. 첫 안내를 할 때에는 다들 남자들이었습니다. 전혀 문제가 없었지요. 그런데 두 번째에는 목사님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여자 교인들이었습니다! 국경에서부터 올라오는데 때가 우기인지라, 왜 길가에 꽃들은 그리도 많이 피었는지….

“이 꽃은 뭐예요?”

“그럼, 저 꽃은 무슨 꽃이에요?”

“이 나무는 무슨 나무지요?”

정말 마음 같아서는 길 가의 꽃들에 죄다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벌써 국경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넘도록 “모른다.”고 대답하기에는 성지순례 오신 분들이 점점 저를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가시방석”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더군요. 거 웬만하면, 제가 알고 있는 싯딤 나무라도 좀 물어봐주지, 이놈의 싯딤 나무는 이집트에도 많아서, 이미 다들 이집트의 성지순례 안내자로부터 들어놓았기 때문에 아예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정말 난감하지요. 12_Trees_03_pdf 다음날 아침, 한 여자 권사님께서 제게로 와서 에셀나무는 어떻게 생겼어요? 우리가 가는 길에 볼 수 있나요?” 하고 물어 보셨습니다. 어제 하루 온종일 모른다고 했는데, 오늘 마저도 또 모른다고 하면, 더 이상 저를 못 믿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러다가 잘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서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만 10년을 넘게 해 오신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 이 전도사(막역한 사이임). 에셀나무? 지금 어디인데? 그래? 문제없어! 엔게디 필드 스쿨에 들릴 거지? 들어가자마자 두 번째 나무야.”

역시 제게 보험증서 같은 집사님은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제게 정확하게 에셀나무를 알려주셨고, 아주 당당하게 버스에서 걱정마시라고, 곧 에셀나무 나오니 알려드리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였습니다. 막상 엔게디 필드 스쿨에 도착해 보니, 계단에 오르자마자 두 번째 나무인지, 아니면 계단을 오르고 나서 입구처럼 보이는 간이 건물을 지나서 두 번째 나무인지 알 길이 없었던 거지요. 등에서 식은 땀이 나더라고요. 순간 여기에서 당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그 여자 권사님 저에게 달려오시어 “어느 나무예요? 이 나무예요?” 하면서 계단에 오르자마자 두 번째 나무를 손으로 가리키셨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고는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을 이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권사님께서 속도원들에게 에셀 나뭇잎를 보여준다고 그 잎을 따는 겁니다. 으~ 완전히 코에서 불이 날 지경입니다. ‘자연보호를 하셔야지 그 소중한 잎을 왜 따시는지….’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하여간에 그렇게 슬쩍 지나갔습니다. 그러고는 모두들 버스를 타실 때에, 저도 슬쩍 그 나뭇잎을 땄습니다. 확인을 위해서 말이지요.^^ 12_Trees_04_pdf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그 집사님을 만나서, 제가 딴 그 나뭇잎을 보여주면서 맞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집사님도 모르는 나뭇잎이라더군요.

“아, 그 간이 건물을 지나서 두 번째 나무구나!”

이미 때늦은 후회이지요. 그 권사님을 비롯해서, 다른 분들도 이미 따버린 그 나뭇잎을 철석같이 에셀 나뭇잎이라고 믿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하면, 아마 당장에 저더러 버스에서 내리라고 그럴 것 같았거든요. 그냥 그렇게 조용히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분들을 벳샨 국경으로 모셔다 드리고는 죄책감 같은 것이 들더라고요. 그러고서는 집으로 들어와서는 그 놈의 한 맺힌 나무들과 꽃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빙빙 도는 겁니다. 곧바로 사전을 펴들고서는 성경에 나와 있는 백스물여덟 가지 나무와 풀, 꽃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나무나 꽃들을 설명한 책자도 읽고, 사진도 찍고 하였지요. 하지만 그 때 그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어떻게 가실길이 없습니다. 혹시 형과 제 편지를 같이 보는 기독교세계의 독자들 중의 한 명이 그 때 그 성지순례객들 중의 한 분이면, 정말로 머리 숙여서 사과드립니다. 그때 그 안내 중에서 에셀나무” 빼고는 정말 다른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괜히 그 사건 하나 때문에 성지순례 전체를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정말 지금도 진땀이 납니다. 12_Trees_01_pdf 이제는 건기든 우기든 간에 성지순례 오신 분들이 어떤 꽃과 나무를 물어보더라도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때 본 백스물여덟 가지의 나무, 풀, 그리고 꽃들을 전부다 완벽하게 외우고 있어서가 아니라, 모를 때에는 모른다고 하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가 모른다고 해서 절대로 순례 오신 분들이 저를 믿지 못하거나, 핀잔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그 분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성지순례 안내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스라엘의 일상에서 가장 성서적인 것을 캐내어 주는 안내자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친구 목사들도 아마 교회에서 심방이다, 무슨무슨 교육이다 해서 많은 교인들과 신앙의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어떤 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성서의 구절을 들고 나와서 물어보곤 하겠지요. 형처럼 말이에요. 형이 가끔씩 성서에 대해서 질문할 때에는 저도 잘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었답니다. 그 때에 잘 알지 못하지만, 목사이기 때문에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잘못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마치 알고 있는 양 잘못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잘못인 것을 아마 우리 친구들은 저보다도 이미 먼저 알고 있을 겁니다. 제가 무슨 책을 봤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라. 그러면, 점점 더 무식해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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